매일신문

백세참기름 공장 어르신 4명의 고소한 '인생 2막'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지난 22일 오후 대구 달서구 감삼동의 한 참기름 공장. 입구에서부터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방문객을 맞았다. 33㎡(10평) 남짓한 공장 안에서는 참기름을 짜는 노인들의 손길로 분주했다. 깔때기 모양의 압착기 주둥이에는 쉴 새 없이 참깨들이 부어졌다. 압착기를 통과한 참깨들은 노릿한 참기름으로 변해 하나 둘 병에 담겼다.

실직, 구조조정 등 유례없는 불황 속에서도 일터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연 노인들이 있다. 2005년 대구 달서시니어클럽 노인 일자리 만들기 사업 일환으로 2천만원의 보건복지가족부 예산을 받아 문을 연 '백세 참기름 공장'은 노인 4명이 운영하는 작은 공장이다. '정성들여 만든 참기름을 먹고 100세까지 다들 오래오래 살라'는 뜻에서 백세 참기름이라고 지었다. 이곳에서 하루 생산하는 참기름은 320㎖짜리 100여병. 월 매출 1천만원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다.

그러나 개업했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중국산 깨로 만드는 참기름이라 '저질'을 떠올리는 소비자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실버들의 정성 앞에서 이런 불신도 서서히 풀렸다. 할머니들은 새벽같이 재래시장을 누비며 깨끗하고, 윤기 나고, 둥글둥글한 최상품 중국산 통깨만을 찾았다. 개업후 6개월이 지나자 백세 참기름의 품질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김군대(69) 할머니는 "깨 농사를 지어봐 좋은 깨를 잘 알아. 중국산이라도 다 같지 않지"라고 했다.

좋은 깨를 쓰느라 생산 단가가 높지만 먹는 음식이기에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가격도 확 내렸다. 320㎖ 한 병에 시중가보다 1천~2천원 싼 6천원선이다. 320㎖ 참기름 두 병과 100g짜리 볶음깨가 들어있는 선물세트도 1만5천원대로 저렴하다. 높은 매출에도 남는 게 별로 없다. 재료값, 공장 월세를 빼고 나면 1인당 20만원 남짓한 돈이 노인들의 몫이다. 배달을 맡고 있는 박성길(70) 할아버지는 "요즘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데 이 나이에 일자리가 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고 말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보름간 연장 근무를 했지만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참기름 공장이 이곳 노인들의 인생을 고소하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부터 다들 얼굴에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흐르고 10년은 젊게 보인다고 자랑했다. 김 할머니는 "요즘 게이트볼을 치러 갈 때마다 친구들이 '몸에 좋은 참기름을 먹고 젊어졌다'고 놀린다"고 했다.

달서시니어클럽 류우하 관장은 "노인들의 정성 덕에 참기름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운영자를 10여명으로 늘리고 연 매출액 1억5천만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053)564-0103.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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