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율형 사립고는 '서울형 私立高'

정부가 교육의 질을 높이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추진 중인 자율형 사립고가 과다한 재정부담 등 설립 요건이 까다로워 재단법인의 재정이 열악한 지방에서는 설립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교육계에서는 자율형 사립고가 현실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격차를 더욱 벌릴 '불평등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방은 어렵다?=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연말 자율형 사립고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교과부는 자율형 사립고를 2010년 30곳 개교하고 2011년 20개교, 2012년 40개교를 추가해 2012년까지 모두 100개교를 세울 계획이다. 시·도교육청은 올 3~5월 전환신청을 받은 뒤 심사를 거쳐 5월 말까지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승인할 계획이다.

하지만 자율형 사립고 전환에 뜻을 둔 대구경북의 사립고들은 재정 부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과부가 법인 전입금 비율을 특별·광역시의 고교는 등록금 수입의 5% 이상, 도 소재 학교는 3% 이상을 자율형 사립고 지정 조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초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희망했던 대구경북 5, 6개 고교 가운데 계성고, 포항제철고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포기 상태다.

수성구 A고 교장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려면 학교법인이 매년 학교에 5억원 정도 전입금을 내야 하는데 학생 선발권은 제한돼 있어 전환에 따른 실익이 별로 없어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 학교운영지원과 이경훈 사학지원 담당은 "대구에서 교직원의 건강보험료 등 법정부담금을 전액 부담하는 사립고가 2개교에 불과할 정도로 학교 법인들의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며 "서울과 수도권지역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자율형 사립고 설립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경북에서도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 중인 포항제철고를 제외하곤 내년 개교를 목표로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준비하는 학교가 없다. 도교육청 학교운영지원과 장진영씨는 "현재까지 자사고와 관련한 문의전화가 아예 없다"고 했다.

◆서울 중심의 정책?=비싼 등록금도 학부모들에겐 부담이다. 자율형 사립고의 등록금은 일반 사립고(연간 150만원)보다 3배 이상 많은 500만원 안팎이다. 경북의 C고 교장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누가 시골학교를 다니겠냐"라고 말했다.

자율형 사립고에 냉담한 분위기는 대구경북만은 아니다. 경남, 전북 등 5, 6개 시·도에서도 현재까지 자율형 사립고를 추진하는 학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자율형 사립고는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교과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목표 100개교 중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20개교 이상 설립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사립고의 절반 정도가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희망하고 있는 서울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시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142개 사립고 중 67개교가 전환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의 한 학교법인 관계자는 "자율형 사립고 설립 사업은 지방학교 법인들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서울 중심의 정책"이라며 "교육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북의 D고 교장은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율형 사립고가 설립되면 학력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지방의 우수인재가 고교 진학 전부터 빠져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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