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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문지방에 앉으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만 가끔은 꾸중 들은 기억도 날 때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문지방에 앉으면 어머니로부터 걱정을 들은 생각이 난다. 문지방은 방바닥보다 높은 데다 반들거리는 편평한 나무가 길게 누워 있어서 걸터앉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햇볕 좋은 가을날 그곳에 앉아서 책이라도 읽는다면 참 편안하지만 잠시라도 그곳에 걸터 있기라도 하면 집안 어른들은, '문지방에 앉으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며 크게 나무라셨다.

어릴 적에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가 자라면서는 미신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문지방에 앉는 사람은 정말 재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온전히 믿는다. 문지방은, 사람들이 종일 드나드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밥상도 들어가고 다른 물건도 들어간다. 그곳에 앉아 있다가는 들어가는 밥상 위의 뜨거운 국에 델 수 있고, 날카로운 물건에 찔려 상처를 입기도 할 것이다. 들어가는 큰 물건을 가로막는 방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비키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싸움이 벌어질 수 있으니 그 모두는 재수가 좋은 일이 아니다. 사람이나 물건이 들고 날 때마다 주의를 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앉아 있다면 비키라고 나무랄 수 있지만 집안의 어른이 앉아 있으면 뭐라고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재수 없다.'는 미신이 나오기 전에는 너도나도 걸터앉아서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수많은 세월 그런 경험을 한 선인들이, 문지방에 앉지 말라고 가르쳐도 그곳은 여전히 사고다발(?)지역으로 남았으니 재수 없다는 말로 매우 엄한 가르침을 내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미신이라는 금기(禁忌)로 굳었고, 나라님이라도 그곳에는 앉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지체가 높은 사람이라 해도 그곳은 점령할 수 없이 훤하게 비워두어야 하는 특별한 공간이 된 것이다. 얼마나 민주적이고 사회학적인 깨우침인가.

요즘 주택구조는 아파트형식이 많아 문지방에 걸터앉기 좋은 모양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 물건이 드나드는 곳임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조심하라고 깨우친 그 말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상대와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미신 속에 숨은 상호존중심을 되새기며 지키는 일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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