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한국인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줬거나 한국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철가방, 궁전 형태의 예식장, 가든식 갈빗집, '붉은 악마' 티셔츠, 주방가전의 꽃무늬 등 52가지가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재단법인 형태 공공기관인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은 한국의디자인문화 유산을 조사 발굴하고 해외에 홍보하기 위한 첫 사업으로 '코리아 디자인 목록'을 최근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 담긴 철가방, 궁전 형태의 예식장, 가든식 갈빗집 등이 포함됐다. 선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철가방은 개발자도 명확하지 않지만 문화인류학적 소산이라 할 만큼 완전한 디자인이고, 궁전 형태의 결혼식장은 서구에 대한 환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문화의 소산이며, 가든식 갈빗집은 중산층의 확산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평으로 선정 사유도 정리했다.
물론, 88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뽀로로, 아기공룡 둘리 등 캐릭터나 아이리버, 초콜릿폰, 쿠쿠밥솥, 참이슬, 바나나맛 우유 등 특정 상품의 브랜드나 올림픽스타디움, 타워팰리스 등 건축물도 선정 목록에 들어있다. 그러나 이들 상품이나 캐릭터, 건축물의 선정에도 단순한 외형의 기능적, 미적인 우수성과 함께 문화적인 고려가 반영됐다. 예를 들면 아기공룡 둘리는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너무나 닮아있고 에피소드도 한국적이어서 세련되면서도 국적을 의심받지 않는다"는게 추천 이유다.
선정위원들은 오랜 기간 한국인의 생활속에서 함께 해온 모나미153볼펜, 신라면, 칠성사이다, 속칭 '이태리 타월', 세운상가, 이순신동상 등이나 삼겹살 회식 문화와 친밀한 솥뚜껑 불판, 사람들의 뇌리 속에 인상이 깊은 포니, 시발택시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제품들도 목록에 넣었다. 생활 패턴을 바꾼 한국형 대형소매점 이마트, 2002월드컵 때 공식 티셔츠를 제치고 디자인의 역동성과 자발적인 시민참여의 힘으로 2천만장이 팔린 '붉은악마(Be the Reds!)' 티셔츠,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가느다란 금속성 수저도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선정됐다.
이밖에 52가지에는 청계천, 이한열 걸개그림, 촛불소녀 캐릭터, 휴대전화의 문자입력 방식인 천지인 시스템, 돌침대, 김치냉장고 딤채, 그린T셔츠, 안내표지판, 마포아파트, 금성흑백TV 1호, 한샘시스템키친, 경부고속도로, 뿌리깊은나무, OB맥주, 오리표싱크대, 삼익쌀통 등도 포함돼있다.
선정 기준은 우수 디자인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한국적인 정체성을 띤 디자인으로, 선정작업은 디자인 전문가인 김영철, 김진경, 박해천, 최경원 등 4명의 큐레이터가 약 50개씩 추천한 디자인을 강현주(인하대 교수), 김명환(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오창섭(건국대 교수) 등 3명이 선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합뉴스
◆한국적 '생활 디자인'의 요모조모
▷붉은악마 티셔츠(2001년, 박영철) = 관료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는 나올 수 없는 참신한 디자인으로, 전통과 현재적인 의미를 역동적으로 재현했다. (김영철)
▷주방 가전의 꽃무늬 장식(197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중반) = 1970년대 이후 20여년간 자취를 감췄던 꽃무늬는 삼성과 LG 등 대형 가전업체들이 '아트가전''패션 가전'을 내세우며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고 앙드레김의 꽃무늬 가전도 나왔다. (박해천)
▷바나나맛 우유(1974, 빙그레) = 대부분 음료수 용기는 손으로 잡기 편한 크기로 길쭉하게 생겼다. 그러나 바나나 우유의 장수 비결은 기능성보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넉넉한 자태가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감성디자인의 사례다. (최경원)
▷'이태리 타올'(1962, 김필곤) = 이태리 타월처럼 손바닥만한 천 조각 하나가 한국인의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꾼 사례는 아마도 찾기 힘들 것이다. 부산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김필곤이라는 사람이 새로운 타올 개발을 시도하던 중 목욕탕에 가서 실패한 원단으로 몸을 문지르다 발견했다고 한다. 이름을 이태리 타월로 정한 이유는 당시 원단이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천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경원)
▷철가방 = 알루미늄이나 함석판 같은 재료로 가공된 철가방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값싼 물건이면서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개발자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철가방은 단지 하나의 디자인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소산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시간이 흐른 뒤 박물관 맨 앞자리를 차지할 유물이 될 것이다. (최경원)
▷모나미153볼펜(1963, 모나미) = 이렇게 오래 변하지 않으면서도 많이 사용되는 제품도 없을 것이다. 딱 필요한 것만 갖춘 구조,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완벽한 수준이다. (김명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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