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영월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서 있는 왕방연 시조비의 내용이다. 조선 세조 때 금부도사를 지냈던 왕방연이 임금의 명에 따라 폐위된 어린 단종을 청령포에 두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읊었다 한다.
영월은 발길 닿는 곳마다 단종의 한과 넋이 서려 있는 곳이다. 청령포뿐 아니라 사약을 마신 관풍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시를 남겼던 자규루, 주검이 묻힌 장릉 등 단종 애사(哀史)가 살아 숨쉬는 유적지가 즐비하다.
이 가운데 특히 청령포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주변 경치가 겨울 여행의 진수를 실감케 한다.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타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지만 오직 한겨울 만은 예외. 청령포를 에워싸고 있는 남한강 상류 지류(서강)가 꽁꽁 얼어 육로를 열어주는 까닭이다.
조심조심 얼음 강을 건너 마주한 청령포는 울창한 송림으로 뒤덮여 있다. 송림을 헤치면 단종이 머물던 본채를 승정원 일지의 기록에 따라 복원하고 당시 궁녀와 관노를 밀랍인형으로 재현한 '단종어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地, 단종이 머물던 옛터라는 뜻)'라는 글이 영조 대왕의 친필로 음각된 단묘유지비와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 또한 금지한다'는 내용의 금표비를 볼 수 있다.
단종어가를 빠져 나오면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수 십년에서 수 백년 수령의 거송이 들어 차 청령포수림지라 불리는 곳이다. 수림지를 걷다 보면 한가운데 우뚝 선 관음송(觀音松)에 절로 시선을 빼앗긴다. 높이 30m에 가슴높이 둘레만 5m에 이르며 지상 1.2m 높이에서 두 가지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단종의 유배 모습을 지켜보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이라는 이름이 유래했고,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관음송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 쉬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온다.
청령포에서 만날 수 있는 단종의 마지막 유적은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 층암 절벽 위에 서 있는 망향탑.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어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손수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 한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가는 길=북대구 IC~중앙고속도로~제천IC~청령포
볼거리
▷섶다리
영월 주천면 판운리는 여름철 맑은 물과 강변 풍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겨울 무렵이면 섶다리가 놓여져 이색 볼거리를 제공한다. 섶다리란 여울에 갈라진 참나무로 다릿목을 세우고, 낙엽송·장대로 이어 소나무 가지를 깐 뒤 그 위에 흙을 덮어 놓은 임시다리. 강을 사이에 둔 마을 주민들의 왕래를 위해 매년 물이 줄어든 겨울 초입에 놓았다가 여름철 불어난 물에 의해 떠내려갈 때까지 사용한다. 이곳 섶다리는 판운마을회관 앞에 놓여져 평창강을 사이에 둔 밤나무가 많이 난다는 밤뒤마을과 건너편의 미다리마을을 하나로 연결해 준다.
강원도 강변 마을과 평창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판운리 섶다리는 잊혀져 가는 옛 추억에 빠져들게 한다. 한겨울 '꿍', '꿍' 얼음 우는 소리를 들으며 섶다리를 건너는 기분이 왜 이리 정겨운지…. 70m에 달하는 섶다리에 올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다 보면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감촉에 마냥 설렌다.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대한민국 전도와 비교해 보세요." 영월군 서면 옹정리 산 180번지 선암마을 전망대에 서면 한반도를 꼭 빼닮은 지형을 내려다볼 수 있다.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세가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으론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자세히 보면 동쪽 끝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듯한 작은 바위까지 있다. 선암마을의 이 특이한 지형은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쳐지기 전 강물이 크게 휘돌아 치면서 만들어진 것. 또 강을 낀 동쪽은 높은 절벽에 나무가 울창한 반면 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 가깝다. 북쪽으로 백두산, 남쪽으로 포항의 호미곶과 같은 산과 골짜기가 오묘하게 자리한 것도 신기하다. 전망대에 비치된 대한민국 전도와 마을 지형을 비교하다 보면 마치 통일된 한반도를 보는 듯한 묘한 착각에 빠진다.
먹거리
▷다하누촌
2007년 영월군 주천면에 등장한 다하누촌은 '한우 특화 마을'이다. 다하누란 '모든 것이 다 한우' 라는 뜻이며 이곳 주말은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 할 만큼 북새통을 이룬다. 다하누촌은 영월·평창··횡성·안동 등지에서 공수해온 질 좋은 1등급 한우를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곳. 사육·도축·판매에 이르는 복잡한 유통과정을 줄여 한우 가격대를 확 낮췄다. 다하누촌의 가장 큰 특징은 정육점에서 등심·갈비살·차돌박이 등 원하는 부위의 한우 고기를 사다가 주변 식당에서 직접 구워 먹는 것. 상차림 비용으로 2천500원(1인 기준)만 지불하면 즉석에서 신선한 고기를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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