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턱이 창에 의해 날카롭게 잘려나간 남자의 유골. 앉은 채로 위에서 칼로 세 차례나 찔려 살해를 당한 20대 여자의 유골. 조총이 뒤에서 뚫고 나간 흔적을 보여주는 5세 이하 유아의 부서진 두개골.
부산의 한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굴된 유골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400년 만에 나타난 유골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kbs 역사추적은 임진왜란 당시 참혹하게 살해당한 부산 동래성 군민들의 삶을 역추적한다.
취재팀은 2005년 6월 과거 동래성 자리인 부산의 지하철 3호선 수안동 역을 찾는다. 예리하게 잘려나간 두개골과 구멍 난 유골들이 수북하다. 이곳에선 지난 3년간 3차례에 걸쳐 이뤄진 발굴에 의해 81개체에서 최대 114개체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과 함께 발견된 수많은 화살촉과 칼. 창날, 깍지, 찰갑, 투모들과 목익(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세운 나무 말뚝)도 함께 나왔다. 해자에 설치되는 나무 막대기인 목익이 수천 개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동래읍성의 해자는 놀랍게도 목익과 함께 도심의'지하'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동아대 고인골 전문가인 김재현 교수는 심층 분석을 시작했다. 분석 결과 동래성에서 출토된 유골은 최소 남자 59개체, 여자 21개체, 유아 1개체였다. 치아분석 결과 영양 상태가 부족한 것으로 판명됐다. 또 두개골 분석 결과, 일본인의 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보였다. 분석 결과 20대에서 40대까지 골고루 분포하고 있었다. 특히 구멍 뚫린 유골의 경우 5세 미만 유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과연 400년 전 동래성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선조 25년(1592) 4월 15일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선 최정예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와 조선민관군의 전투가 있었다. 백년간 내전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했던 왜군에 비해 조선의 병력은 추풍낙엽이었다. 당시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나서 항전했지만 동래성 주민들은 몰살에 가까운 인명 피해를 입으며 전투에 패했다. 당시 최대 5천명의 조선인이 죽은 것으로 기록된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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