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북경과 라싸를 잇는 칭짱열차가 연결되기 몇해 전이었다. 풍족하지 않은 배낭여행자라는 얄팍한 핑계로 비싼 입경 허가서 없이 티베트로 가려다 검색대에서 걸린 적이 있었다. 중국 비자 연장을 위해 꺼얼무 여행자사무소에 갔을 때 만났던 그 공안이 검색대에 다시 나올 줄 꿈엔들 알았겠는가. 여권을 압수당하고 다음날 출두하라는 명령만 받은 채 두려움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했다. 위법행위에 대한 내 잘못도 있지만, 이국 공권력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는 묘한 불쾌감도 함께 엄습해 왔다. 결국 다음날 각서를 쓰고, 허가서를 받은 영수증을 제출하고서야 겨우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꺼얼무에서 라싸로 들어가기 위해 서른 시간을 넘게 가야하는 침대 버스 안이야.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을 정도의 좌석이 빽빽한 버스는 닭장과 다를 바가 없네. 정류장에서 대만계 영국인 할아버지를 만났어. 읽을 줄은 몰라도 중국말을 할 줄 알아 허가서 없이 가려 하신대. 검색대를 지날 때까지 아는 척하지 말자 하시더군. 그러면서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산 중국 신문을 펼쳐 드셨는데, 신문을 거꾸로 들고 계신 거야. 얼른 눈짓을 보냈더니 멋쩍게 웃고는 얼른 신문을 바로 펼쳐, 두어 시간을 열심히 읽는 척하시네.
다사다난한 며칠 덕분인지 나는 창가에서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시린 바람에도 불구하고 금세 잠이 들었어. 지뿌드드해진 몸을 돌려 서리 낀 창을 연방 닦아대니 눈보라가 휘날리는 길을 버스는 속도도 줄이지 않고 질주 중이구나.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라싸를 향해 가는 티베트인들을 위태롭게 비껴 지나가면서 말야. 하지만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그 트럭과 버스들 사이 위태로운 길에서도 그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대지를 온몸으로 안으며 걷고 있구나. '라싸 가는 길'
순례여행에 나선 티베트인들은 세계의 지붕에서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체투지는 이마, 양 팔꿈치, 양 무릎, 즉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절하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이 하는 오체투지는 거의 전신투지(全身投地)에 가깝다.
알다시피 티베트 독립에 대한 지속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티베트 본토의 중국화 경향은 심각한 상태이며 앞으로의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험난한 성지 순례의 길을 나선다는 티베트인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라싸 가는 길에 겪었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과 그 불안감이 어찌 그들의 상실감에 비교될 수 있겠는가. 오체투지하는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매우 안락한 버스 좌석에서 바라보며 부정적 감정의 씨앗을 자비라는 힘으로 태울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절이란 행위는 종교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주는 듯하다. 언젠가 한 번도 절을 해본 적이 없다는 길동무에게 대충 절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몸을 낮추는 무심한 동작이 바닥에 닿는 순간 묘한 평안을 준다며 신기하다 했다. 아마도 그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에서 오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건 스스로를 내려놓는 행위기도 하다.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선은 그렇게 몸을 낮춰 상념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방정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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