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평화에의 염원

이 시대의 평화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평화도 피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거기에는 정치적, 경제적 측면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계층적, 지역적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립과 같은 정치적 관계도 평화와 직결되고, 실직과 가난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평화를 깰 수 있다. 그리스와 같은 나라의 사회적 혼란이나 중남미 국가에서 보듯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비롯된 계층 간 격차도 평화와 직결되고, 같은 나라 안에서의 지역 간 갈등과 대립도 평화를 깰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 모든 요소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이념적으로 우리는 아직까지 남북이 대립하고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화되고 있다.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여전하고, 수도권과 지방간의 양극화나 부자들과 빈자들 간의 양극화도 위험한 수준이며 선거 때마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 간의 대립도 여전하다.

어쩌면 우리는 평화를 얻기에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 저변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깔려있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형성된 우리의 정서는 비빔밥과 같이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다양한 종교, 다양한 음식문화, 다양한 사상, 다양한 직업이 공존하는 곳이 우리사회다. 다양성은 창의력의 바탕이어서 우리의 창의력은 종종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또한 유난히 시끌벅적한 뉴스거리가 많은 것도 우리다.

다양성 안에서 평화를 얻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어떻게 보면 복잡한 요소들이 절묘하게 어울려 용케도 평화가 유지되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화산과 같이 평화가 깨질 수 있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염원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평화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사회 리더들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오바마 리더십의 키워드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오바마는 경쟁자였던 힐러리를 끌어들이고, 일본계를 보훈처장에 임명하는가 하면, 빈민가출신, 명문대출신 등 그야말로 인종, 학력, 신분을 불문하고 모두를 끌어안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간적으로 편하게 대화하고 아우르고 소통하는 오바마의 리더십은 백인들의 지지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었고, 미국인들에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신뢰를 주고 있다. 여기에는 변화, 다원주의, 긍정, 공감이라는 콘셉트가 들어 있다.

빌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자본주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자산을 더 많이 쌓는 것이 이득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부는 전 사회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미래 부의 원천을 고갈시켜 결국은 모두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전체를 볼 줄 아는 시야가 필요하다. 편향성은 평화를 깰 수 있다. 70-80년대 건설사 CEO들은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즈음 CEO들에게는 소통을 통해 직원들이 마음으로 승복하고 따르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소통하지 못하는 CEO들은 성공신화에 대한 자기 확신에 빠지기 쉽다.

우리사회의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경험과 시야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 자신감이 편향성을 가질 수 있기에 겸손의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을 경제의 시각으로만 보는 요즈음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보다 더 큰 틀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전광진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사목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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