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지은 보각국사 일연(一然·1206~1289)은 비슬산과 깊은 인연이 있다. 일연은 말년에 군위 인각사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편찬하고 그곳에서 입적했다. 그러나 일연이 정사(正史)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맞서 전설·설화 등 야사(野史)인 삼국유사를 쓰기로 결심하고 자료를 모은 곳은 바로 비슬산이다. 그가 비슬산에서 도를 깨치고 생애의 가장 많은 시간을 주변 사찰에서 지냈다.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은 9세에 출가해 14세 때 승과시험 장원을 했다. 그는 비슬산 보당암에 들어와 수도정진한다. 보당암은 지금의 비슬산 대견사지로 추정된다. 보당암에 머물 때 몽고군 2차 침입으로 나라가 전란에 휩싸였다. 이때 일연은 문수보살의 계시로 인근 무주암으로 피해 화를 면하고 그 후 '삶의 경계는 소멸이 없고 부처의 경계는 더함이 없다(生界不滅 佛界不增)'라는 화두로 오도(悟道·깨달음)에 도달한다.
이후 남해 정림사, 지리산 길상암, 청도 운문사, 포항 오어사 등에서 머물다 60세를 넘어 다시 화원 인홍사로 돌아와 대중에 가르침을 주었다. 일연은 용천사를 중수하고 유가사, 용연사, 남지장사 등 비슬산 자락의 사찰·암자 등을 옮겨다니며 머문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비슬산은 일연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 준 곳이며 이곳에서 경험한 내외전(內外傳)과 다양한 신앙들이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은 '삼국유사' 집필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김상준 달성군 부군수는 "일연이 비슬산에 머문 기간은 37년이며 이곳에서 삼국유사 집필을 준비한 만큼 일대에 남아있는 일연의 발자취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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