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앤북스'가 뉴에이지 문학선 네 번째 작품으로 장편소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구현 지음)을 내놓았다. 연초 미국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의 뱀파이어 소설 3부작(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이 잇달아 발간돼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데 이어 '좀비'들이 서점가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좀비는 원래 아이티 부두교에서 살아 있는 시체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이후, 비척대며 걷고 일그러진 신체를 가지고, 사고력이 없는 대신 본능적 욕구에 충실하며, 물리면 동종으로 전이되는 좀비 이미지가 형성됐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역시 우리가 아는 좀비문학 고유의 특징인 잔인한 공포와 끝없는 살육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유머를 곳곳에 포진시켜 좀비문학이 경쾌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좀비 균을 배양해낸 미치광이 박사의 잘못된 사랑과 지배 계층의 자기욕심에서 비롯된 일대 난동극 속에서 택배기사, 전직 강력계 형사,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종업원 등 일군의 무리가 대학로 좀비들과 화끈한 일전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괴기작품이 이어지는 이유
괴기 작품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성의 시대에도 끊임없이 출몰하는 전근대적 반이성과 광기에 대한 시대의 불안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괴기소설들은 대부분 급변하는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변화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당대의 신경증적 요소를 함께 표출한다. 그런 점에서 1868년에 발표된 스티븐슨의 는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꼬집음과 동시에 사회적 맹신 상태에 들어간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과 억눌린 본능(광기)의 분출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특히 좀비가 이미 죽은 시체들이라는 점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허용되어 왔고, 덕분에 좀비 영화들은 신체훼손과 피의 분출이 난무하는 고어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에서도 군인들이 좀비들을 죽이는 장면에서 그 끔찍한 몰골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살육에 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이 소설에서는 하드고어적이라기보다는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지만) 같은 맥락이다.
좀비라고 불리는 시체들이 사고력 없이 식욕에 따라 배회하는 모습은 확고한 중심 가치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유행이나 시대적 조류에 반성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대중 또는 현대인을 좀비가 대변하는 것이다. 좀비 문학은 이전에 있었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이 시점에 우리나라 서점가를 좀비가 배회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선 자리, 현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중심을 잃은' 우리는 불안한 모양이다.
◇어떤 괴기소설들이 있었나
괴기소설 계통의 고전 가운데 하나는 1818년 간행된 메리 셸리의 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은 자의 뼈로 신장 8피트의 인형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었는데,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개념에 주목하자면, 프랑켄슈타인의 인조인간은 부두교의 주술사가 시체를 부활시켜 만든 좀비와 닮은꼴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인조인간을 만들지만 이후 창조주와 피조물은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파국을 맞이한다. 박사가 자신의 피조물에게 살해당한다는 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존재를 만들고도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박사, 자신을 창조한 존재로부터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창조물의 절망과 분노 등은 곱씹어볼 만하다. 특히 이 소설이 나올 당시 시대적 배경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소설이 쓰여진 19세기 초반은 과학과 기술의 급격한 성장에 편승해 생명조차도 과학의 힘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화와 과학의 발전이 지향하는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사람들의 심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뱀파이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된 브람 스토커의 (1897년) 역시 괴기작품의 고전이다. 프랑켄슈타인 못지않게 영화나 소설, 게임 등을 통해 거듭 변주되며 발전해온 뱀파이어의 신화는 이 작품의 영향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전설에 의거해 탄생한 드라큘라 백작의 스토리는 불사의 백작뿐 아니라, 조너선 하커, 루시 웨스턴, 반 헬싱 등 등장인물 대부분이 하나의 전형을 이룰 만큼 성공을 거두었고 흡혈귀를 하나의 문학적 소재로 부상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작품 역시 근대와 전근대의 마지막 각축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영국에서 돛배를 타고 고성으로 달아나는 (전근대적인 동구권의) 드라큘라를 (근대의 도래를 주도한 서유럽의) 반 헬싱 박사 일행이 기차를 타고 쫓아가는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결국 드라큘라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근대의 마지막 저항이 끝나고 근대의 화려한 승리가 선포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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