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을 제발 죽이지 말아주세요!"
지난해 12월 정리해고를 당한 한 철강업체 노동자의 부인이 노동위원회의 구제를 호소하며 인터넷에 올린 글 마지막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이 노동자의 부인은 '해고는 가장의 죽음이자, 가장이 거느린 가족 구성원 전체의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해고와 전직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산업현장으로서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매일신문은 희망의 봄기운이 솟아나는 입춘날, 우울 모드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벼랑위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밝은 기사를 써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처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타개책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바른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J(Jobless)의 공포' 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공포에서 한발 물러나 계십니까?
대구의 한 대리운전 업체 관계자는 "많은 날엔 하루 6, 7명씩 '대리기사가 되겠다'며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했다. 그만큼 실업상황이 심각해졌고 일거리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J의 공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 노동 관련 현장 지표를 뽑아들고 있는 노동청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예측이다. 봉급쟁이들은 불면의 밤을 이어가고 있다.
◆구조조정의 공포
최근에 나타난 'J의 공포'는 연령을 가리지 않고 해고의 칼날을 날린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스럽다.
대구 최대 공업단지인 성서공단을 관할하는 대구북부고용지원센터가 지난해 12월 실직한 2천487명을 대상으로 연령 분석을 해보자 40대(31.1%) 다음으로 많이 일자리를 잃은 연령층은 50대(20.3%)가 아니었다. 30대(23.1%)였다. 20대 해고도 18.2%를 차지하면서 50대와 큰 차이를 두지 못했다.
대구지역 한 상장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이윤이 안 난다고 생각되면 해당 사업부문을 통째로 정리해버린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절박한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구조조정과정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칼을 날린다. 인정사정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더욱이 대구경북지역 산업현장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더 큰 감원 압박을 갖고 있다. 일감이 줄어도 버텨나갈 수 있는 현금이 많은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위기 때 생명줄을 이어갈 수 있는 산소통의 크기가 대기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국 중소기업 대다수가 "지금 인력이 과잉 상태"라고 보고 있다.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것.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12일부터 닷새동안 전국의 중소제조업체 1천415개를 대상으로 고용수준을 조사한 결과, 4분의 1이 넘는 업체들이 '고용 과잉 상태'(27.1%)라고 답했다. '고용 과잉' 응답률은 통계가 시작된 2002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설문 결과를 지수로 환산한 지난달 '고용수준실적 SBHI(중소기업건강도지수)'도 108.5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103.8 이후 3개월 연속으로 100을 넘어섰다. 중소기업들은 3개월째 수요·생산 상황에 비춰 고용 규모가 적정 수준을 초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지수가 3개월 연속 100을 웃도는 일은 처음이다. 통계 작성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이 지수는 2005년 2월을 제외하고는 항상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만성 인력 부족에 빠져 있던 중소기업들이 지구적 대공황 국면 앞에서 '인력 과잉'이라는 목소리를 처음으로 냈다.
청운노무사사무소 이용호 노무사는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생각되는 노동자들을 위해 국선노무사를 알선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노동자들은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해고 과정에서 입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고 했다.
◆희망의 빛은 없는 것일까?
대구 북구 칠성동에 있는 대구직업전문학교. 실업자 직업교육을 하는 이 직업훈련학원은 이달에 수강신청을 받고 있는데 올해는 대다수 강좌에서 정원을 모두 채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지난해보다 30% 정도는 수강신청 인원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실직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최근 실직자들은 연령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층에서 실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측량 등의 분야에서 기술을 익히면 정말 취업이 잘됩니다. 실직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영역이 많습니다."
대구직업전문학교 강맹석 원장은 "요즘 '구조조정 바람'을 실감하고 있다"며 "하지만 낙담하지만 말고 새로운 기회를 노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난해 봄 대구의 한 기계가공업체에서 정리해고된 이모(32)씨. 그는 대구의 한국폴리텍Ⅵ대학 실업자 재취업과정에 등록했다. 6개월 동안 컴퓨터 응용가공 과정을 열심히 공부한 그는 지난해 가을 실직 6개월 만에 대구의 한 정밀기계회사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이씨는 "'내가 왜 잘렸나'라는 자괴감을 빨리 버리고 일어선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깨쳤다"고 했다.
한국폴리텍Ⅵ대학 박무수 교수는 "기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재취업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교육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노동부가 지원하므로 큰 비용부담없이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배움을 통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이 있다.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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