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간경화 후유증 남편 돌보는 김영주씨

▲ 간경화 후유증인 저혈당으로 인해 3, 4시간에 한번꼴로 각설탕을 먹어야 하는 김영주씨는 식사를 하고 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온다. 아내 김형숙씨가 떠주는 한 숟갈, 한 숟갈이 유일한 힘줄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 간경화 후유증인 저혈당으로 인해 3, 4시간에 한번꼴로 각설탕을 먹어야 하는 김영주씨는 식사를 하고 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온다. 아내 김형숙씨가 떠주는 한 숟갈, 한 숟갈이 유일한 힘줄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남편은 저에게 '종교' 이상"이라며 굳은 믿음을 나타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젠 당신의 편지를 받기만 할 뿐 답장을 하지 못하는 처지군요. 지금껏 받은 편지만 해도 1천통이 넘는데 제가 당신께 답장한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군요.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왜 하필 답장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더 클까요. 병원에서도 두달을 버티면 잘 버틸 거라는데 언제 다시 답장을 쓸 수 있을까요. 의식이 또 혼미해집니다. 각설탕을 좀 먹어야겠네요. 마른 침을 삼키며 설탕을 혀로 녹입니다. 그래요, 당신은 내게 설탕 같은 존재입니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책읽기를 즐기던 당신께 제대로 된 책 한권 선물하지 못했네요. 그런 제게 당신은 간까지 떼어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 그런 당신의 뜻마저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간경화로 투병 중인 김영주(52)씨는 3시간에 한번씩 각설탕 10개를 꼬박 먹어야 했다. 4년째다. 간경화 후유증으로 저혈당이 나타나 혼수상태에 빠지면 헛것이 보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간경화로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1987년이었다. 나이 서른에 한달 보름을 입원해 비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남편의 건강은 악화일로다. 의료진은 간 이식수술을 해야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혹시 내 간이라도 될까 싶어 조직검사를 청했다. 검사비만 100만원 가까이 됐다. 6년 전 남편이 생일 선물로 해준 목걸이와 반지를 팔았다. 그래도 모자라 돈을 빌렸다. 다행히 이식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식 날짜도 잡았다. 병원에서는 수술비 공탁금으로 2천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숨이 턱 막혔다. 당장 입원할 돈도 없어 남편은 외래 진료로 일주일에 한번씩 배에 찬 물을 빼내고 있다. 그런데도 한번에 15만원이 사라진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정부에서 받는 월 78만원이 고작인데. 이렇게 4개월을 버티는 동안 남편은 자주 혼수상태에 빠졌다.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청와대 신문고에까지 글을 올렸지만 허사였다. 방송국에서는 '어린이가 있는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정하지 않았다.

부부가 사는 방은 8㎡ 남짓. 바깥 부엌 옆으로 문이 없는 세면실이 있었고 다섯 걸음 저편에 화장실이 있었다. 4년째 살고 있는 사글세 120만원짜리 이 집도 지난해 9월부터 반년에 60만원짜리로 바뀌었다. 이마저도 이달 말이면 끝이다.

김씨가 아내 김형숙(43)씨를 만난 건 1998년. 아내 김씨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고아로 자라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생긴 병이다. 그런데 김씨와 함께 있을 때면 한없이 마음이 편했다. 일용직 인부로 일하던 김씨와 평생을 살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의 줄타기 같은 삶에서 유일한 낙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편지를 남편이 읽어보는 것이었다. 엿새 전에도 아내는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아내의 2장짜리 편지에는 '나의 지병으로 당신을 고생시켜 미안했는데 지금은 당신이 아프다. 그래도 짧은 순간 안정을 찾는 당신을 볼 때마다 내겐 웃음이 생기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는 내용이 깨알같이 나열돼 있었다. 11년째 이어지는 연애편지였다.

김씨는 "아내가 주는 간으로 건강을 되찾아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아내가 쓰는 글을 끝없이 읽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닭똥 같은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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