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태양이 아니라도 좋다. 어둠을 스치는 희미한 빛이라도 보고 싶다. 죽을 힘을 다해 망망대해를 떠다녀도 육지가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어느 곳에도 없다. 더욱 캄캄한 건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일상이 돼버린 암울한 얘기가 지겹다고 하는데 실상은 이제 어둠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경제지표부터 살펴보자. 무역수지는 한 달 만에 다시 적자로 반전됐고 1월 수출은 사상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내수는 살아날 기미가 없다. IMF는 올해 우리 경제가 -4%대 성장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까지 나온 전망치 중 최악이다.
실물경제는 어떤가. 구조조정으로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비정규직 위주에서 이제는 정규직까지 본격 대상으로 떠올랐다. 자영업자는 문을 닫고 청년실업자는 넘실대고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넘어진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니 부모의 등골은 더욱 휘어진다.
이럴 때 사회적 약자들은 서럽다. 모두가 원망스럽다.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생산 현장에 돈이 돌도록 하라고 특별 지시를 내려도 실상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는 어디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는 기업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가계를 살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타의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게 된 지인과 소주잔을 기울이다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직장인이라는 그는 이제 대리운전 경력 열흘 정도의 완전 초보였다. 급여가 50% 줄어든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취객들의 길잡이 노릇에 나선 그가 하루 6시간가량 대리운전을 해서 버는 돈은 2만원 남짓. 투자한 금액(보험가입비 및 PDA 구입비 100만원)을 회수하려면 40일을 더 일해야 한다고 했다. 대리운전에 나선 것은 중'고교생인 두 아들의 학원비 때문. 한 명당 영어 수학 2과목만 학원에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70만원. 그것도 소수정예반은 꿈도 못 꾸고 열명 남짓 수업하는 학원인데도 그렇단다.
가계를 살리는 길은 우선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공교육이 정상화돼서 학원교습, 과외 없이도 상급학교 진학이 가능하게 해야 하고 수도권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하면 사교육 의존도는 약화된다.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사교육비에 대한 소득공제가 이뤄지는 것을 적극 검토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은 사교육을 받고 있다. 중'고교생 자녀 2명을 둔 가정의 경우 아무리 적게 들어도 연간 5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가 들어간다.
국세청 직원이나 조세 전문가들은 국가가 사교육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점과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가정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해 버렸다. 국가가 사교육 시장을 육성한 형국이 돼 있는데 이를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취학전 아동 경우 교육비 공제를 해주고 있다. 불평등을 이유로 보류했던 대학 등록금도 대상이 됐다. 한도가 없다고 가정했을 경우 신용카드로 결제했을 때와 교육비 공제를 받을 때의 차이는 서너배에 달한다.
한도를 없앨 수는 없으니 교육비 공제에 사교육을 포함시키고 현재 200만원인 교육비 소득공제 한도를 2배로 늘리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어떨까. 만약 이게 정말 불가능하다면 신용카드 공제한도 20%를 상향 조정하고 공제율을 높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은 '영양가 있는 일자리 만들기'이다. 일자리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정부는 예산 배정과 정부산하 공기업들을 독려해 인턴직 채용을 늘리고 있는데 이는 가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정규직 고용을 늘려야 한다. 여기에는 안정적이고 복지가 잘 된 직장으로 평가받는 공공기관과 금융권의 동참이 필요하다. 단순히 신입사원 초임만 대폭 줄이고 기존 종사자들은 훨씬 높은 임금을 받는 구조는 장차 직장 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평균 연봉 5, 6천만원 이상의 직장에서 총인건비를 줄여 신규 고용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사회갈등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국가가 직접 나서야 가능하다.
최정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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