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백운산 하늘길 트레킹로

하얀 눈 위 도도한 초록빛 생명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오를 수 있는 산행길. 걸어도 걸어도 하얀 눈이 등산화에 밟히며 내는 신음소리가 탄광을 복구하기 위해 쌓아놓은 흙과 돌벽에 부딪혀 선명하게 되돌아와 귀에 속삭이는 정겹기만 한 곳이다.

하늘길 트레킹로는 누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하얀 눈을 처음으로 밟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어 산행을 통해 행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화절령 입구에서부터 임도 주변으로 가득 메우고 있는 자작나무와 낙엽송, 그리고 엄동설한에도 녹색의 기개를 자랑하는 키 작은 산죽(山竹)이 지천에 널려 등산객들에게 풍요와 여유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이곳의 흰 눈은 광산 개발로 검게 그을린 상처 입은 땅의 원혼을 한겨울만이라도 하얗게 감싸주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백운산 산행코스는 강원랜드 폭포주차장~화절령 삼거리~도롱이연못~운탄도로~마운틴탑~(산철쭉길)~백운산 마천봉~밸리탑 탐방로 갈림길~(바람꽃길)~하이원호텔 갈림길~낙엽송숲~잇단 쉼터(벤치)~약수암~정선 고한읍 고한리 막골(약 4시간 소요) 또는 그 반대 방향을 택하면 된다. 고한리 막골에서 낮 12시 30분에 출발하면 오후 4시 40분쯤 폭포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한쪽 방향에서 백운산 정상 마천봉까지 갔다 되돌아 내려오는데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

단김에 백운산 주변으로 함백산'만항재'정암사'몰운대'민둥산'아우라지 등이 있어 며칠 머물면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정선 고한읍~영월 상동면을 잇는 고갯길 화절령길은 광부들이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꺾어 씹으면서 힘을 냈던 곳, 산골마을 아낙네들이 진달래 등 야생꽃을 꺾으며 길을 걸었다고 해서 이름지어졌다.

이 길은 채탄을 나르던 '운탄(運炭)길'로 불리기도 했다. 주변 탄광에서 캐낸 무연탄 등을 실어나르던 차도를 일컫는 말로 백운산과 두위봉 등 산자락을 타고 100km가량 이어지는 데 그 중 일부가 화절령이다.

이곳은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뒤 버려두다시피 했다가 몇년 전 하이원리조트가 트레킹 코스로 조성했다. 얼레지'진달래'처녀치마 등 봄부터 가을까지 산길을 물들였던 들꽃들이 트레킹 코스의 이름이다. 하이원리조트가 정비한 등산로와 트레킹 코스는 모두 2.8km에서부터 10.4km까지 3, 4시간 가량소요된다. 이 구간에서는 매년 하이원리조트가 주최하는 '하늘길 트레킹 페스티벌'과 산악자전거대회가 열린다.

눈덮인 운탄길은 힘든 일은 모두 다 떨쳐버리고 새해 희망을 설계하는 일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그만큼 맑고 깨끗하면서 조용하기 때문이다.

입구에는 운탄길을 만들 때 심었다는 낙엽송과 자작나무가 제법 자라 이 산의 명물이 되고 있다. 양쪽으로 나 있는 계곡에는 얼음이 한여름 동안까지도 녹지 않을 만큼 두껍게 꽁꽁 얼어있다.

광부 남편 무사고 기원하던 '도롱이연못'

20분가량 더 올라가 낙엽송 아래로 난 오솔길을 지나면 정자가 나온다. 폭포주차장에서 하늘길 트레킹로를 4km 통과한 지점이다. 바로 옆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는 이곳에 진달래가 많음을 알려준다. 함백산과 맞닿은 백운산 중턱의 도롱이연못은 화절령 인근에 살던 광부들의 아내들이 갱도에 들어간 남편의 무사고를 빌었던 곳. 이 못은 탄광 갱도가 지반 침하로 무너지면서 생겨난 것으로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연못이 생기자 도롱뇽이 알을 낳기 시작했고 그후 멧돼지 등 동물들이 이곳을 샘터로 여기고 찾기 시작했다. 직경 100m쯤의 수면에 한쪽은 나뭇잎이 덮여 있고 물가 곳곳에는 이미 생기를 잃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이곳에는 여전히 도롱이가 살고 있는데 요즘엔 눈이 덮이고 물이 얼어버려 못의 형체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안내판에는 탄광 매몰사고가 빈발했던 1970년대 화절령 일대에서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이 남편이 일을 나간 뒤 연못에 올라 도롱뇽의 생사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활발하게 살아움직이는 도롱뇽을 보면서 남편 또한 무사할 것이라고 믿고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했다는 것. 도롱이연못이란 이름도 도롱뇽에서 비롯됐다는 것.

화절령의 도도하고 장쾌한 풍경

도롱이연못 넘어서면 바로 화절령이다. 낙엽송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두위봉 등 주변 산자락들이 임도를 따라 모이고 고즈넉한 산간 마을은 평화롭게 다가온다. 도롱이못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8km. 연탄색의 검은 흙과 황톳길로 평탄, 걷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백운산 정상에 오르는 2km 구간은 좀 힘이 들지만 주변 산봉우리와 마운틴탑 등을 보기 위해서는 참고 올라가야 한다. 가까이는 백운마을, 멀리 상동지역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겨울에 푸른 잎을 빼앗긴 채 앙상한 가지만 남겨진 활엽수들로 뒤덮인 백두대간의 전경을 한눈에 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화절령길에서 도롱이연못을 지나 왼쪽으로 오르는 마운틴로는 산죽밭 속 오솔길이다. 2.4km 거리를 오르면 하이원스키장 리프트 하차장이 나온다. 여기가 마운틴탑. 하산길에는 아이젠과 지팡이를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겨울 산행을 다녀보지만 이처럼 빼어난 풍광은 처음이다. 이 광경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스스로 느끼면서 큰 소리로 '야호'를 외쳐보았다. 그리고 여행의 중요성과 그 값어치를 새삼 느끼게 됐다.

서울에서 온 등산객들도 추위를 예견한 탓인지 완전무장을 한 채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며 인사를 한다.

백운산 정상 마천봉

도롱이연못에서 화절령 백새꽃길을 통해 올라가면 백운산 정상까지는 6.5km를 더 걸어야 한다. 임도네거리에서 마운틴탑(0.8km)을 거쳐 올라가도 된다. 마운틴탑에서는 40분 거리. 마운틴탑에서 정상까지는 봄이면 연분홍 철쭉이 만발한다. 그래서 산철쭉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길 트레킹로를 따라 백운산 정상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길 바닥에는 눈 속으로 석탄 부스러기가 거뭇거뭇 보이고, 길 옆으론 키 작은 산죽밭이 마치 이국땅처럼 느끼게 해준다.

아직 광부들의 인기척이 들리는 곳.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커다란 줄기, 그 탄맥의 중심지였던 강원도 정선. 정상에서는 수없이 많은 탄맥을 머금고 있는 산의 등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의 바람은 그야말로 살을 애는 듯 차갑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배터리가 얼어 작동이 잘 안 될 정도다. 하지만 산줄기 아래로 보이는 산죽길과 하이원스키장 마운틴탑 등을 바라볼 수 있다는 데서 바람을 견디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백운산 마천봉'이라 적힌 커다란 정상석과 스키장이 조성돼 있는 북으로 너른 전망데크가 설치돼 있다. 스키장의 최고점인 마운틴탑과 밸리탑, 그리고 두위봉과 억새산으로 유명한 민둥산, 그 사이로 지장산과 사북읍도 보인다. 정상석이 바라보는 동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정면에 태백산, 왼쪽으로 우리나라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만항재(1,330m)와 레이더기지가 위치한 함백산이 눈에 들어온다. 마천봉에는 우리나라 모든 측량 기준이 되는 국가 기준점인 삼각점 1만6천개 중 하나(태백22)가 설치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운산 정상에서 하늘길 트레킹로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산죽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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