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인숙(가명·24·여)씨는 이틀 전 퇴근길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대구 남구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골목길을 줄곧 따라와서다. 겁에 질린 이씨는 종종걸음을 치며 도망쳤고 남자는 그녀의 원룸 1층까지 따라온 뒤 자취를 감췄다. 이씨는 "보안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불안에 떨며 걸었다"며 "앞으로는 집앞까지 택시를 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모(27·여)씨도 2일 오후 10시쯤 달서구 본동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정문 앞에서 동생을 한참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수상한(?) 남자가 1층 출입구에서 서성대고 있는 것을 봤던 것.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 앞까지 마중나오라고 한 김씨는 "평상시에는 동네 주민으로 여겼을 텐데 강호순 사건이 터진 뒤에는 모르는 사람만 보면 괜히 두렵다"고 했다.
강호순의 부녀자 연쇄살인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신변을 보호하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회식 등은 최대한 자제하고 귀가 시간을 앞당기거나 통신회사의 위치추적 서비스로 안전을 지키려는 여성이 늘고 아내를 위해 귀갓길 에스코트를 자처하는 남편들까지 등장하는 등 '밤거리' 풍속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김모(30·여·달서구 본동)씨는 지난주 휴대전화 위치추적 서비스를 신청했다. 김씨는 "가족들에게도 위치추적 서비스를 신청한 것을 일일이 설명하고 엄마와 여동생에게도 가입을 권유했다"며 "혹시나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이동통신업체에 따르면 위치추적 서비스 신규 가입건수는 지난해 10월 9천여건이던 것이 강호순 사건이 발생한 12월에는 2만5천 건, 지난달에는 1만7천 건으로 늘었다.
시도, 구군청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강호순 사건 이후 한바탕 몸살을 치르고 있다. 도로변 가로등과 골목길 보안등, CCTV 추가 설치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야근이 잦다는 이모(28·여)씨는 최근 집앞 골목길에 보안등을 추가로 설치해줄 것을 구청에 건의했다. 이씨는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거리는 불과 5분밖에 되지 않지만 오후 9시쯤 퇴근하면 이 일대는 인적이 끊긴 상태고 보안등도 없어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특히 기름값 급등으로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가로등 격등제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김모(33·여)씨는 "에너지 절약 차원이라지만 30m정도 간격으로 나 있는 가로등을 격등제로 운영하면서 거리가 어두워졌다"며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시민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폭 12m 이상 도로 중 인도가 포함된 도로변에 설치된 가로등은 격등제로 운영하지만 지난 설 때 1만개의 가로등은 격등제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을 확인해 격등제를 풀고 있다"고 했다.
한편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성격 장애)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인터넷에서 자가 사이코패스 테스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한나(27·여)씨는 "요즘 직장 동료들 사이에 상대방의 사이코패스 테스트 점수가 얼마인지를 묻는 대화가 가장 많다"며 "여러 종류의 테스트가 나돌아 정확성에 의문이 들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위험해졌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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