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화·민담도 관광상품으로…경북도 '스토리텔링 마케팅'

# 조선 세조 때인 1457년. 영주에는 엄청난 피바람이 불어닥쳤다. 순흥도호부 부사(府使)였던 이보흠 등 지역 선비들이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을 도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됐던 것. 관군은 가담자뿐 아니라 아무 잘못도 없는 주민들까지 마구잡이로 처형했고, 백성들의 피는 청다리에서 4㎞(10여리) 떨어진 곳까지 흘러 '피끝'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됐다. 비극이 지나간 뒤 고을사람들은 고아가 된, 의롭게 목숨을 던진 선비들의 자식을 몰래 집으로 데려와 친자식처럼 키웠다. 아이들이 크면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일러줬다. 절개 있는 선비의 자손들인 만큼 근본을 잊지 말고 굳건히 자라달라는 의미였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농에는 이처럼 역사가 담겨 있다.

# 400여년 전 예천 용궁에는 이계라는 예쁜 기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가정은 아버지가 앓아 누우면서 더욱 궁핍해졌고, 그녀는 가슴에 둔 정인이 있었지만 결국 관기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미모를 탐내 첩으로 삼을 속셈이었던 고을 이방은 현감의 생일잔치가 열린 회룡포에서 음흉한 마수를 뻗쳤고 이계는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서다 결국 절벽에서 떨어져 숨졌다. 지금도 여름철이면 '이계바위'에서 보이는 산 능선에 자주 안개가 끼는데 연인이 손을 잡고 바라보면 안개가 저절로 걷히면서 하트 모양의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주민들은 정인을 향한 이계의 사랑이 안개로 나타난다고 믿고 있다.

골골마다 전해오는 설화·민담이 관광상품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이란 관광홍보의 새로운 트렌드로, 단순하고 일방적인 정보제공이 아니라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관광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방식을 말한다. 세계적으로는 '플란더스의 개'의 무대인 벨기에 안트워프, 핀란드의 산타클로스 마을 등이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경북도는 5일 관광산업의 새로운 전기 마련을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접목한 이야기산업을 집중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헌·현장조사를 통해 발굴해낸 이야기 보따리도 꽤 크다. 23개 시군에 걸쳐 무려 1천822개나 된다.

경북도는 이를 인물, 역사문화자원, 대중적 명소 등 8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우수 스토리 30개는 흥미와 픽션을 보태 각색작업을 마쳤다. 앞으로 플래시애니메이션을 제작해 홍보하는 한편 드라마·만화작가 등에게 소재로도 제공할 방침이다. 또 시군별 교차분석을 통해 공동분모를 조합한 '유일무이 경북'(Only one in 경북), '한국의 맛 계보' 등 10개의 테마를 관광상품화하는 한편 관광지 안내판도 이야기 중심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장우혁 경북도 관광산업국장은 "관광에서 스토리텔링은 노른자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며 "지역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에 생명을 불어넣어 관광객들의 흥미와 감성을 만족시키겠다"고 말했다.

일선 시군들도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봉화군은 다음달 20일까지 봉화지역과 관련된 창작 이야기를 현상공모하고 있다.

또 상주시는 지난 2007년 전국 최초로 시도한 '이야기축제'를 올해 3년째 개최할 예정이며, 안동시는 조선시대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는 '원이 엄마의 편지'의 주인공, 이응태 부부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제작할 방침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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