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보호무역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 J V 로빈슨은 1937년에 쓴 '실업이론에 관한 논의'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 국가는 타국을 희생시켜 자국의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국내 경기와 고용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갖는다고 했다. 로빈슨은 이를 '近隣窮乏化(근린궁핍화 beggar-my-neighbor) 정책'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상대방의 카드를 모두 빼앗아 온다는 트럼프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쉽게 말해 '너 죽고 나 살자'는 것이다.

이 정책은 상대국의 보복이 없어야 성공한다. 하지만 지금껏 그런 '점잖은' 나라는 없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이를 증명한다. '나만 살겠다'는 정책은 타국의 연쇄 보복과 자국이기주의의 국제적 확산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근린궁핍화의 전형적인 예가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법이다. 수입품에 대해 평균 59%, 최고 400%까지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경제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후버대통령은 시행을 강행했다. 미국 GN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4.2%에 불과해 상대국이 보복해도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20여 개 국이 보복에 나서면서 1929년 52억 달러였던 수출이 1932년에는 16억1천100만 달러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세계무역액도 36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불과 4년 만에 세계무역액의 3분의 2가 사라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국은 '블록화'로 갔다. 영연방국가는 영국을 맹주로 '스털링 블록'을 만들었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 공을 들였고 프랑스는 아프리카 또는 동유럽과 블록을 형성하려고 했다. 독일은 러시아의 식민지화를 뜻하는 '민족 생존을 위한 생활권',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구축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지구촌에 보호무역의 유령이 꿈틀대고 있다. 정부자금이 투입된 건설사업에는 자국산 철강만 사용하도록 한 미국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등 각국이 자국산업의 보호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자유무역의 강요는 '사다리(보호무역) 치우기'라고 비판했다.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선진국이, 개도국이 자기들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려는 술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출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살길은 여전히 자유무역이다. 보호주의 시대가 再臨(재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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