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막장 드라마'

신조어 '막장 드라마'는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막장을 TV 드라마 수식어로 끌어온 것이다. 한마디로 갈 데까지 간 드라마란 의미다. '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 '에덴의 동쪽' 등이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로 손꼽힌다.

막장이란 타이틀을 얻으려면 '막장 5종 세트'를 충실하게 갖춰야 한다. 바로 삼각관계(불륜), 임신, 출생의 비밀, 재벌 2세와 서민의 사랑, 배신과 복수다. 꿈의 시청률이라는 4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SBS의 '아내의 유혹'은 막장 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준다. 친구와 바람이 나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 변신을 하고 접근, 치밀하게 복수한다는 게 이 드라마 줄거리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엔 갈 데까지 간 표현들이 많고 불륜, 출생의 비밀, 배신과 복수 등 막장 드라마의 코드를 난잡하게 버무리고 있다.

드라마를 현실의 반영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막장 드라마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상이 막장이라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친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일침은 그래서 곱씹어볼 만하다. 드라마보다 더 꼬인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막장 드라마가 대리만족이란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인기가 높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불황기에 시청자들이 '독한 것'을 찾게 되고, 그 맛을 본 이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받아야 반응하는 탓에 막장 드라마가 봇물을 이룬다는 얘기도 있다. 막장이 또 다른 막장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인기를 끌 장르로 막장 드라마를 택하게 된다는 현실론도 있다.

'대장금' '허준'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 우리 드라마는 韓流(한류)의 주역으로 맹활약한 바 있다. 그랬던 '드라마 왕국' 한국의 안방극장이 어쩌다 막장투성이가 됐는지 씁쓰레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막장 드라마로는 한류 바람을 계속 이어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경북도가 어제 관광산업의 새로운 전기 마련을 위해 설화나 민담 등 다양한 콘텐츠와 접목한 이야기산업을 집중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광산업뿐만 아니라 설화나 민담을 잘만 가공하면 드라마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다. 막장 드라마가 범람하는 요인 중 하나가 콘텐츠의 부족이다. 작가가 실록에 나온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상상력을 입혀 쓴 '대장금' 같은 작품에서 콘텐츠의 고민을 찾아볼 일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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