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수를 꿈꾸는 자 '부메랑 효과'부터 생각하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복수(復讐)를 이처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앙갚음'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 '함무라비법전'(기원전 1천750년)에도 흔히 '탈리오 법칙'으로 불리는 보복 규정이 나와있고, 구약성경 곳곳에도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게르만 사회에서는 '혈수', 즉 피의 복수라고 해서 씨족사회 구성원 중 누군가 살해당하면 가해자가 속한 씨족의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한서지리지에 전해오는 고조선의 '8조금법'의 제1조에는 '사람을 죽이면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는 내용이 있다. 함무라비법전 이후 무려 4천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류는 '피의 보복'을 되풀이하고 있다. 뼈에 사무치는 원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부당한 대우에 분개하고, 어떻게든 갚아주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실천에 옮기지 못할지언정 복수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과연 복수는 '극 중 타인 이야기'일 뿐일까?

◆나도 이럴 때 복수하고 싶다

회사원 J(34)씨는 몇 해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직장생활 3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신입사원 한 명이 쭈볏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낯이 익다싶어 유심히 봤더니 바로 군대 고참이 아닌가. 대학원을 마치고 조금 늦깎이로 입사한 K씨는 군대 시절 유난히 J씨를 괴롭히던 3개월 선임. 자다가 내복 바람으로 불려나가서 얼차려를 받은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정말 와 닿았다. 반가움에 '○○야!'라고 다가온 K씨에게 정색을 하며 이렇게 답했다. "○○씨. 회사가 장난입니까? 누가 함부로 선배 이름 부르라고 했습니까?" 이후 몇 달 동안 J씨는 철저하게 당한만큼 갚았다. 동료들 보는 앞에서 면박주기는 기본이고, 밤새 기안한 서류를 보란듯이 찢어버리고, 껄끄러운 거래처 상대는 K씨에게 도맡겼다. 어느 날 부서 회식자리. 술기운에 취한 K씨는 "너무 한 것 아니냐?"며 항의하다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고, 결국 보다못한 J씨도 소박한(?) 복수극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고.

운전하다보면 가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길거리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화물차를 모는 L(43)씨는 김천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한바탕 활극을 벌였다. 갑작스레 추월한 승용차 때문에 깜짝 놀란 L씨는 경적을 울리며 전조등을 깜빡거렸지만 앞차 운전자는 미안하다는 손짓조차 없이 유유히 속력을 내버렸다. 마침 화물도 없이 빈차로 가던 L씨는 두고보자며 엑셀을 밟았고, 잠시 뒤 승용차를 추월해서 속력을 늦춰버렸다. 승용차 역시 경적을 울리며 화를 내기는 마찬가지. 엎치락뒤치락을 몇 차례 거듭한 뒤 두 사람은 마침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삿대질과 함께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다행히 승용차에 동승한 사람이 말리면서 몸싸움은 피했지만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상황이었다. L씨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순간,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화가 치솟았고 엑셀을 밟았다"고 말했다.

◆영화와 드라마 속 복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줄거리는 통속적이고 뻔한 수준을 넘어서 허무맹랑할 정도다. 하기야 드라마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말도 안돼!"라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짓는 것이라나. 그럼에도 불구, '아내의 유혹'은 정당한 복수라는 코드를 갖고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큰 줄기가 '복수'인데다 '정당성'까지 부여돼 있으니 대미를 장식할 복수까지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소간의 허무맹랑함은 드라마적 장치로 치부되고 만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내의 환생, 그리고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로서 지닌 치명적 유혹, 그 속에 빠져들어가는 남편 및 주변 인물들의 몰락하는 과정.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드라마치고 크고 작은 복수가 얽혀있지 않는 경우는 없다. '에덴의 동쪽'은 복수의 얼개가 지나치게 복잡해서 시청자들이 '도대체 누가 더 나쁜 놈이야?'라는 의구심을 갖게끔 만들었다. 하기야 드라마나 영화처럼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면 세상사가 그리 복잡할리도 없겠지만.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인간 군상들이 복수심을 품게 된 이유와 그것을 되갚을 수 밖에 없는 심리적 묘사에 충실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3부작은 '복수는 나의 것'(2002년), '올드보이'(2003년), '친절한 금자씨'(2005년)다. 앞의 두 편과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라는 동일한 코드 속에서도 조금 차이점을 보인다. '착한 유괴'라는 대사가 인상 깊었던 '복수는 나의 것'은 물론 유괴라는 범죄가 첫 원인으로 등장하지만 유괴한 아이가 실수로 숨지게 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되고, '올드보이' 역시 자신도 모르게 내뱉았던 말이 수십년이 지난 뒤 어느 날 자신을 15년간 독방에 감금하는 벌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두 작품 모두 선의의 희생자가 생겼고,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복수를 정당화한다. 이에 비해 '친절한 금자씨'는 철저한 악인이 등장한다. 아이를 유괴해 살해해 놓고도 죄를 뒤집어 씌운 채 뻔뻔스레 살아가는 이에게 금자씨는 복수의 친절을 베푼다. 물론 여죄수 감방에서 동료를 괴롭히는 덩치를 교묘하게 살해하는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과연 죽일 만큼 잘못했는 지는 사실 의문이다.

◆복수는 여전히 진행 중

복수는 정당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도 한다. 영화 '밴디트 퀸'의 실존인물로도 유명했던 인도의 여성 산적두목인 풀란 데비는 어떨까? 하층민 출신인 풀란은 상위계층 남성들에게 윤간당하고 애인까지 잃은 뒤 복수심에 불타 인도 산간 오지를 떠돌며 산적 떼를 이끌게 된다. 영화 속에는 인도 사회에서 풀란이 당한 고통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어느 날 마을을 습격한 풀란은 자신을 강간했던 범인 2명을 포함해 상위계층 남성 20여명을 살해하고 만다. 정부에 대항하며 수년간 쫓고 쫓기던 풀란은 결국 조건부로 항복한다. 하지만 훗날 국회의원까지 지낸 풀란은 역시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이의 총탄에 결국 숨지고 만다.

최근 벌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교전에서 팔레스타인인 1천300여명이 사망하고 5천400여명이 부상했으며,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400명과 여성 100명이 포함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은 정작 하마스 공격을 '구경'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평화시 나들이 장소로 유명한 이스라엘 남부도시 스데로트 인근의 '파라쉬 언덕'이 하마스에 대한 공격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는 것. 쌍안경과 줌렌즈를 이용해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가자지구 상공에서 미사일을 쏟아붓는 장면을 감상하면서 "속이 후련하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 하지만 이들도 할 말은 있다. 대부분 하마스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거나 부상한 사람들이라는 것. 비록 복수심 때문이지만,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파라쉬 언덕'은 '부끄러운 언덕'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리처드 배티스트(49)라는 의사가 이혼한 전처를 상대로 20억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의사와 간호사로 만난 배티스트와 아내 도널은 10년간 결혼 생활을 하던 중 2000년대 들어서며 갑자기 사이가 나빠졌고, 2001년 아내가 신장질환 판정을 받자 남편은 자신의 콩팥을 기증했다. 하지만 사이는 계속 나빠져서 결국 2005년 이혼하게 됐다. 문제는 최근 남편이 콩팥 이식 후 이혼도 하기 전에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법정다툼까지 벌어진 것. 장기기증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이 이길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것이 전문가 견해. 물론 장기기증까지 받았으면서 외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상식상 납득하기는 힘들다. 복수심에 불 탄 남편의 소송 제기는 어떻게 봐야 할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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