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극한 상황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 설 귀성길에도 갑자기 들이닥친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 곳곳에서 차량 사고가 속출했다. 결빙 도로는 더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달 18일 오전에는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량에 의해 장병조 삼성전자 부사장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빗길 운전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도로 위의 위험요소를 충분히 인지·파악하지 못하면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도로상 위험 상황을 실제로 체험해 봄으로써 안전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하는 선진국형 안전운전 체험연구교육센터가 국내 최초로 지난달 19일 경북 상주 청리공단 내에서 준공됐다. 지난달 23일 체험교육센터를 찾아 실제 체험을 해봤다.
◆생각과는 많이 다른 도로운전
체험 차량 뒷좌석에 앉으니 경주용 차량에서나 볼 수 있는 안전 바가 있었다. 극한 상황 연출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운전대를 잡은 하승우 교수가 좌석벨트를 맬 것을 지시했다. 자동차 전문가 출신인 하 교수는 체험교육센터가 문 열기 전에 일본 안전운전중앙연수소에서 교육을 받았다. 조수석에는 김기봉 체험연구개발처 처장이 앉았다.
하 교수는 먼저 '기초훈련코스'로 차를 몰았다. 안전한 주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연수하기 위한 시설. 운행 전후 차량의 일상점검 요령이나 올바른 운전자세 등에 관한 체험도 할 수 있다. 먼저, 자동차운전면허 기능시험장에서 볼 수 있는 코스 연습시설이 눈에 띄었다. 급커브 코스가 독특해 보였다. 하 교수는 "급커브를 우습게 알다가 사고가 많이 난다"며 천천히 핸들을 꺾어 나갔다. 그때 바로 옆 '자유훈련코스'에 서 있는 8t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트럭 곳곳에 가느다란 밧줄이 묶여 땅 위로 늘어져 있었다. 트럭의 사각지대를 체험하는 곳이었다. 살펴보니 사각지대는 체험 차량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이런 특성을 모르고 트럭 운전자가 차로를 변경하다가는 옆 차로의 차량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힐 수도 있다는 말. 김기봉 처장은 "승용차 운전자는 고속도로에서 트럭을 추월할 경우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체험교육을 본격적으로 느끼게 한 것은 큐브레이크 테스트. 시속 10㎞ 저속 운행상태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시험이다. 먼저 하 교수 지시에 따라 안전벨트를 풀었다. 천천히 차가 움직인다 싶더니 차가 급정거했다. 순간 기자의 몸은 조수석 뒤쪽을 향해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안전벨트를 매고 똑같은 실습을 하자 상황은 달랐다. 잠시 몸이 앞으로 밀린다 싶더니 안전벨트가 몸을 꽉 잡아 주었다. 큰 도로에서는 보통 시속 70㎞로 달린다. 이런 속력으로 달릴 때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뻔하다.
◆과속하지 않는 것이 최상책
안전벨트를 매더라도 사고 발생시 부상을 완벽히 피할 수는 없다. 김 처장은 "무엇보다 과속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ABS(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 체험실습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자식으로 제어해 제동력을 높인다는 ABS는 고속 주행시 오히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ABS가 작동해 제동하는 과정에서 차 바닥에서 심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빠르게 달리던 차를 급정차하자 차 바닥에서 드르륵하는 소리가 반복됐다. ABS가 제동장치를 제어하면서 생기는 소리. 긴장한 운전자는 이 소리에 겁을 먹고 브레이크를 놓을 수도 있다.
과속 운전은 차량 운전자에겐 일종의 한계상황이다. 돌발상황 시 차량을 제어할 수 없어 결국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 체험연구센터의 8개 실외 체험코스 가운데 핵심코스라는 '위험회피코스'나 '직선·곡선제동훈련코스' '일반·고속주행코스' 등에서 이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위험회피코스'에서는 시속 40㎞로 달리다 분사되는 물을 피해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 교수에 따르면, 이 정도 속력은 충분히 차를 제어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시속 10~15㎞ 정도만 더 속도를 내도 장애물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시속 150㎞ 이상으로 달리는 사람은 '목숨을 내놓고 가는 사람'이다. 이 점은 아무리 좋은 차라도 다르지 않다.
'직선제동훈련코스'까지 경험하면 누구나 안전운전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급제동에 의한 자동차의 한계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코스에는 체험 구간에 물을 뿌려 빗길 운전을 연출한다. 이날은 마침 강풍으로 물 뿌리는 건 멈춘 상태. 그러나 바퀴에 살짝 묻힌 물만으로도 충분했다. 시속 40㎞ 정도로 달리던 차가 급정거를 하자 갑자기 회전하기 시작했다. '곡선제동훈련코스'에서는 차의 회전이 더 심하게 진행됐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극한 체험을 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속이 메스꺼워지기도 했다. 김 처장은 "교차로 신호위반 사고의 70%가 과속 때문이다.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올 때 속력이 너무 높아 정차를 못하니까 그대로 통과하면서 사고가 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300번 과속하다 보면 29번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고, 그러다 1번은 꼭 사고가 난다'는 '도로교통의 하인리히 법칙'을 언급했다. 김 처장은 "안전운전은 속력과 자세, 심리에 의해 결정된다. 거기에는 인간의 한계능력과 차량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결론 지었다.
◆디지털 시스템에 활용 방안도 다양
체험교육센터는 전체 훈련과정이 전산화돼 있다. 개별 체험자의 평가결과는 자동으로 중앙컴퓨터에서 집계된 뒤 종합평가지에 반영된다. 이 자료는 곡선주행시 운동이나 돌발상황 시 회피 방향 등을 참고로 도로설계 개선에도 이용할 수 있다. 안전시설물 설치에도 참고할 수 있다. 차량 제작사들은 이를 이용해 부품의 결함 유무를 시험할 수도 있다.
체험교육센터의 최첨단 시설에는 자랑거리도 많다. 위험회피코스의 물 분사 시스템도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됐다. 보통 사용하는 인형 대신 물을 쓰기 때문에 경비까지 절감할 수 있다. 3차원 영상 운전시뮬레이터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15대의 시뮬레이터는 3차원 영상에 의한 가상 안전운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됐다. 아직은 실제와 화면이 많이 차이나 몰입도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메스꺼운 증상도 나타나지만 향후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2월 시범운행을 통해 3월 정식운행이 시작되면 우선 사업용 차량운전자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게 된다. 김처장은 "향후 사고 빈발자를 대상으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동영상 장성혁 인턴기자 jsh052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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