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태양의 축복이 봄날을 재촉하던 4월 나는 다니던 회사를 본의 아니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평화롭게 봄을 맞이하고들 있었지만 나에게는 봄의 햇살이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이 34세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학력도 보잘것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좌절하며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분유값이 부담이 될 정도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집사람 보기가 미안해졌습니다.
둘째아이가 겨우 말문을 열기 시작할 무렵, 그 날도 다름없이 술로 시름을 달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날따라 낮에 잠을 많이 잤는지 아이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엄마! 아빠! 란 말을 배우던 아들놈이 불현듯 "아빠, 힘내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나는 집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고 집사람은 말없이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날밤 나는 아들놈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맴돌아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일자리 찾는 일을 잠시 접고 나는 어떤 일이든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국비로 하는 직업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죽자, 이것도 못하면 죽자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배우는 일이 생소하지는 않았으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왔기에 조금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학원 끝나면 바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늦게 하는 공부가 쉬울 리 없었지만 죽기를 각오하니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부한 덕에 생전 처음으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자격증을 찾아온 그날 아내의 손을 잡고 아이들을 안고 뜨거운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이 바뀐다고 여기저기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곳도 갈 데가 없었던 내가 이젠 골라서 갈 수 있는 기쁨을 맛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이가 이젠 더 정확한 발음으로 "아빠 힘내세요." 할 테니까요. 전병태(대구 서구 평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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