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운 게 한이 돼 무작정 쓰기만 했습니다."
대구의료원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는 김한식(60)씨는 지난해 말 손으로 쓴 옥편(玉篇)을 완성했다. 한 권을 마무리하는데 꼬박 9개월이 걸렸다. 펜글씨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일을 매일 4, 5시간을 반복해 하루 1, 2장씩 쓴 인고(忍苦)의 작품이다. B4크기 종이에 무려 66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크기의 옥편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이다.
김씨는 "아는 인쇄소에 제본을 맡겼더니 그걸 보고 가끔 복사본이라도 갖고 싶다는 사람들이 종종 연락한다"며 "며칠 전에도 부탁을 받고 5권을 복사해 주기로 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묵호(默湖) 김한식 저'라고 적힌 옥편을 뿌듯한 듯 쓰다듬었다.
그가 옥편 한 권을 펜글씨로 베껴 완성한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1982년에 첫 번째 옥편을 완성했고, 1987년에는 2년 6개월이나 걸려 두 번째 옥편을 썼다. 그리고 지난해 또다시 도전했다. 탈고하고 다시 살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썼다.
김씨는 "아들이 둘 있는데 한 권씩 물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 다시 한번 더 쓰기로 했다"며 "못 배운 아버지이지만 평생 노력하고 살았다는 증거를 하나쯤 남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펜글씨를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다. 한자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라며 "욕심은 굴뚝 같았지만 생활에 쫓기다 보니 펜글씨를 쓰는 것으로 배움을 대신했다"고 털어놨다. 학원에서 펜글씨를 배운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돈이 없어서다. 펜글씨 교본 등을 구해 베껴 쓰고 또 베껴 썼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야학이라도 다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수백번도 더했지만 예전 재직하던 운수회사에선 24시간 격일제로 일했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아 홀로 펜글씨만 썼다. 그는 "20세 무렵 군입대 전에는 삼국지 책을 베껴 쓰기 시작해 3분의 2 이상을 쓴 적도 있다"며 "아직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아 언제 다시 한번 도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씨의 남은 꿈은 서예를 배워 붓글씨를 쓰는 일이다. 펜글씨는 이제 노안(老眼)이 심해져 더 이상 계속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지난해 세 번째 옥편을 쓰는 일도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끼고서야 겨우 해낼 수 있었다.
김씨는 "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붓글씨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붓글씨를 배워 멋진 작품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비싼 수업료 때문에 미뤄뒀던 붓글씨를 이제는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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