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春(입춘'4일)이 지났다. 예년 같으면 봄 이야기로 설렐 때겠지만 자고나면 구조조정 같은 우울한 이야기만 들린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근로자들의 신음소리, 취업 못한 청년 백수들의 한숨소리, 일자리 찾아 발버둥치는 자녀들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들의 애끓는 소리들이다.
이 봄, 立春大吉(입춘대길'봄이 시작됐으니 좋은 일이 따름)이 아니라 立春大憂(입춘대우)요, 建陽多慶(건양다경'봄기운이 일어났으니 경사가 많아짐)이 아니라 建陽多苦(건양다고)일 따름이다. 절기상으로야 어김없이 봄의 문턱을 넘고 있으나 우리네 마음은 칼바람 몰아치는 凍土(동토)의 한겨울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경제위기의 태풍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실직의 공포는 국내 단일 공단으로서는 처음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국내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구미국가산업단지(구미공단)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 같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구미공단은 1971년 조성 이후 1999년 11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해 국내 단일 공단으로서는 처음으로 100억 달러 돌파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 여세는 200억(2003년 201억), 300억(2005년 305억) 달러 달성으로 이어졌다. 한강 기적에 버금가는 '낙동강 기적'을 일궈 한국 수출 전선에 한 획을 그었다.
그 덕에 구미공단은 일자리를 찾는 근로자들이 국내외에서 몰리는 '취업 천국'이었다. 구미공단의 근로자 수는 1971년 1천313명에서 출발, 해마다 늘어났다. 1988년 7만 명을 처음 넘어섰고, 2005년 8만756명으로 최고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지난해 말 6만9천148명으로 20년 전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손쉬운 근로자 줄이기부터 나섰기 때문이다.
낙동강 기적의 주역이었던 구미공단 근로자들의 실직과 퇴직의 눈물이 더해진 탓인가. 공단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물이 유난히 凄然(처연)한 느낌이다. 가을이 지나면 매미(秋蟬)도, 부채(秋扇)도 쓸모없이 버림받는 것이 세상 인심이라지만 청춘을, 평생을 바쳤던 근로자들을 하루아침에 내모는 모진 세월이다. 올해는 더 각별하게 읊조려지는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다섯 글자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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