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붉은 꽃을 버리다」/ 노태맹

언젠가 나의 사랑도 끝날 것입니다.

아직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흰 꽃 꺽어 매일 당신에게로 윤회하는 푸른 강물도

저 도시 어디쯤에선가 이제 끝날 것입니다.

아시나요, 검은 느티나무 아래

우리 유리의 둥근 구슬 삼키며 온종일 죽음만 생각했었지요.

어쩌면 당신은 당신의 먼 기억에서

우리 슬픔으로 흘러 넘치는 만들어진 강물소리 같은 것이어서

언젠가 끝날 내 사랑도 우리의 生도

당신에겐 섭섭지 않겠지요

검은 느티나무 아래

유리의 둥근 구슬 삼킨 내 몸 붉은 이끼로 뒤덮이고

붉은 꽃으로 부서지고 부서진 뒤쯤에야

먼 강물소리 당신 사랑도 끝날 것인지요

아직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고

당신은 내 사랑도 없이 먼 강물소리 건너

어찌 그리 잘도 가십니까.

노태맹 시의 핵심은 '유리'라는 지명인데, '유리'는 고대 중국 은나라의 감옥이다. 노태맹의 '유리'는 그러한 감옥이라는 이미지에서 불모의 땅이라는 심리적 요소만 빌려왔다. 문왕은 감옥의 땅 '유리'에서 깨우쳐 오히려 유리 바깥이 혼돈의 감옥인 것을 보았다. 노태맹의 시선도 어디가 '유리'인가에 있지 않고 '유리'의 심리적 변화에 매달린다. 나와 당신 사이의 강물, 이 강물은 유리라는 부박한 곳의 당신에게로 향하는 내 사랑의 장애물이거나 혹은 내 사랑의 기표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나는 게다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이 눈먼 사랑의 언술은 붉은 색과 푸른 색과 흰색 사이에서 철저하게 비구상이면서 주술적이다. 그래서 이 사랑의 시는 사랑을 넘어서 처절하게 아름답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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