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벼랑 끝에 선 사람들] ⑤적막한 지역 산업단지

▲ 대구 염색공단에 물동량이 줄어 일감을 얻지못한 화물트럭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대구 염색공단에 물동량이 줄어 일감을 얻지못한 화물트럭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대구경북지역 산업단지 공장 가동률이 IMF 외환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 덩달아 공단 주변 식당이나 슈퍼마켓 등도 장사가 덜 돼 수입이 크게 떨어지는 등 타격을 받고 있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고 기계소리 우렁차던 공단의 밤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바쁘게 오가야 할 화물운송차량들은 길거리에 멈춰 서 있다.

◆IMF 외환위기 수준으로 떨어진 공단 가동률=대구 성서산업단지공단(이하 성서공단)내 한 자동차 부품업체 간부는 "설 이후 가동률이 65% 정도로 떨어졌다. 생산을 하면 부품이 빨리 빨리 빠져 나가야 하는데 국내외에서 자동차가 덜 팔리니까 재고가 자꾸 쌓여 보관할 곳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했다.

경산제1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도 설 연휴에 앞서 1주일 정도 휴업을 한 이후 최근에 또다시 재고가 쌓여 공장 전체를 다 세우고 전 직원들이 휴가를 했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 듯 지역의 공단 가동률은 IMF 외환위기 수준이다. 대구 성서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평균 가동률은 63.84%로 IMF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지난해 3분기에 비해 6.15%포인트, 2007년 같은 기간에 비해 8.57%p나 떨어졌다. 종업원도 5만3756명으로 전 분기보다 187명 줄어들었다.

한국델파이와 평화산업 등 규모가 큰 업체들이 몰려 있는 달성공단의 지난해 12월 평균가동률이 77%를 기록했다. 전월에 비해 2%p, 전년 동월에 비해서는 5%p 떨어졌다.특히 한국델파이의 휴업 등으로 자동차부품 등 기계금속업종은 최저 65% 수준까지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12월 수출은 7천815만8천달러로 전월에 비해 37%, 2007년 12월에 비해 48.6% 줄었다.

대구염색공단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물량이 급감해 지난해 4분기 공장 가동률이 64.7%로 지난해 2분기 71%보다 급격히 떨어졌다. 공단 내 일부 업체는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부도처리됐다.

공단관리사무소 직원들은 "공장의 생산 라인 중 한 라인만이라도 돌아간다면 공장 가동률에 반영되는데, 실제 공장 조업률을 따진다면 60%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 하는데=공단 입주업체 가동률이 떨어지고, 정부의 잇단 중소기업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의 어려움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든 이 어려움을 버텨내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곳곳에서 묻어 났다.

성서공단의 한 기계부품 업체 사장은 "어떻게 하든 이 어려움을 버티기 위해 노동자들을 감원하지 않고 노동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해 훈련을 하고 있지만 계속해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또다른 자동차부품 하청업체 간부는 "일감이 크게 줄어들면서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리하고 나머지 노동자들이 2,3일에 하루씩 나와 일을 하고 있다"며 "일감은 계속해서 줄어 2차 감원을 해야할 지경이다. 주변에는 버티는데 한계가 온 영세 하청업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박갑상 대구제3공단 관리부장은 "상시 종업원 5인 이하와 5∼30인 규모의 소기업들이 98%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3공단의 경우 입주업체들이 다중고(苦)를 겪고 있으면서도 언제 경기가 회복될 지 몰라 감원도 하지 못하고 공장 문도 닫지 못하는 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단의 최고 경영자들은 "정부의 잇단 중소기업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는 판매부진과 자금난 등 다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앞으로 기업들이 보유한 유동성이 바닥나기 시작하는 3∼4월이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면 연쇄부도 등 상당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단 인근 업소들도 불황의 그늘=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근로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공단 인근 식당이나 가게들도 죽을 맛이다.

성서공단과 인접한 모다아웃렛 주변 한 식육식당 주인 전건우씨는 "공단 입주업체들의 단체 회식이 거의 없다. 간혹 있다고 해도 값이 싼 음식만 시켜 먹고 간다. 이곳 10여개 식당 중 평일에도 저녁 손님이 3∼4팀 이상인 곳은 절반도 안된다"고 우울해했다.

경산제1공단의 한 식당 주인도 "점심시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바람에 손님들이 40% 이상, 저녁에는 60% 이상 줄었고,야식 손님은 거의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대구염색공단에서 만난 한 화물업주는 "바쁘면 하루 두번도 인천을 오갔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두번 화물이 있을까 말까하다. 하루 식대라도 빠지면 무조건 물건을 받으려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달성공단 이진목 과장은 "노동자들이 예전에는 잔업이나 야근을 하느라 공단 인근 아파트 주차장이 한산했는데 요즘은 야근이 없어지면서 오후 6시만 되어도 공단 인근 아파트 주차장이 꽉 찰 정도"라고 했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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