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페리에의 교훈

1982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청산가리 타이레놀 사건'이 터졌다. 존슨 앤 존슨의 캡슐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먹고 주민 7명이 숨진 것이다. 연방범죄수사국(FBI)은 소매단계에서 청산가리가 주입됐을 가능성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존슨 앤 존슨도 사건 발생 직후 신속히 제품을 회수하고 캡슐 제품을 보다 안전한 정제로 교환해주는 등 수습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홍보부서는 언론 취재에 협조하고 관련 정보를 최대한 언론에 공개했다. 이런 노력 덕에 타이레놀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프랑스의 유명 생수 브랜드였던 페리에 '벤젠 사건'은 정반대였다. 1991년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페리에 생수에서 벤젠이 검출됐다. 그러나 페리에는 즉각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는 대신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는 데 급급했다. 심지어 '지하에서 길어 올린 천연 발포성 생수'라는 광고에 역점을 두는 등 마치 벤젠 혼입이 우리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벤젠 혼입 여부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생수에 발포 성분을 첨가하는 가공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페리에는 결국 도산했고 네슬레에 합병되는 비극을 맞았다.

민노총 간부의 성폭행 미수사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게다가 조직적 은폐 의혹까지 드러나면서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이먼 웨스트 감독의 영화 '장군의 딸' 스토리와 똑같은 일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노총과 전교조는 페리에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조직의 도덕성에 흠집이 갈 것을 우려한 민노총 지도부는 피해 여성을 협박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전교조도 피해 조합원의 인권을 지켜주기는커녕 은폐를 시도하다 위기를 자초했다. 자기 딸이 사관학교 동료들로부터 집단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고도 조직(군대)의 명예를 위해 범죄를 은폐한 캠벨 장군이 되고 만 것이다.

타이레놀과 페리에 사건은 중대한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이런 좋은 본보기가 있음에도 민노총과 전교조는 그릇된 판단을 하고야 말았다. 한 여성의 비극적인 상황을 조직 논리로 누르면 범죄마저 감출 수 있다는 유혹에 마비된 것이다. 맹목적인 조직 명예라는 덫에 걸려 진실이 최대의 무기라는 중요한 교훈을 놓쳤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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