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돌풍 타고 불길 덮치자 '생지옥'…목격자 증언 재구성

갑자기 방향을 바꾼 불은 화마로 변해 정월대보름에 소원을 빌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향했다. 관람객들은 억새풀에 걸려 넘어졌고 그 위로 넘어졌으며 일부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현장에서 화상을 입고 대구 푸른병원에 입원한 목격자 7명의 증언을 통해 현장을 재구성했다.

#1.서무홍(54·남구 대명동)씨는 사진을 좋아하는 동료 5명과 억새태우기 사진을 찍기 위해 정상을 향했다. 서씨는 보다 멋진 장면을 담기 위해 회원들과 정상 부근의 낭떠러지쪽에 있었다. 달집태우기 행사가 끝나고 억새태우기로 이어졌다. 억새태우기는 허준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곳에서 평화롭게 이뤄졌다. 하지만 잠시 뒤 불길이 커지면서 바람의 방향이 자신들이 있는 낭떠러지를 향했다. 피할 방법이 없어 불길에 맞서야 했고 벌써 이곳저곳에서는 사람들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서씨는 "사람들이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불길을 피하기 위해 달리다 뒤엉켜 넘어지고 일부 사람들의 옷에 불이 붙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얼굴, 어깨, 손, 다리 등에 화상을 입은 서씨는 창녕의 한 병원에 이송됐지만 화재 장면이 담긴 카메라 등의 소지품을 병원에서 잃었다. 그리고 같은날 늦은 오후 홀로 택시를 타고 대구로 와야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창녕군이 정상 인근의 둘레 2.7km 화왕산성 주변에 너비 25m 안팎으로 설치된 방화선은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변했다. 소화기를 등에 멘 일부 안전요원도 있었지만 불이 커지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2. 서울민속박물관 김창호(36) 학예연구사는 당시 ENG카메라를 들고 정월대보름 행사를 촬영중이었다. 김 연구사는 당시 날씨가 아주 건조해 일부 관람객들은 불이 크게 번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ENG카메라를 들고 달집태우기를 끝낸 뒤 억새태우기를 시작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는데 갑자기 불길이 몸집을 키우면서 속도를 내 사람들을 덮쳤다"며 "억새풀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피할 수도 없었고 살려달라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계속 울려퍼졌다"고 말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얼굴, 팔, 다리 등에 큰 화상을 입었으며 현장이 담긴 카메라를 현장에서 잃었다.

#3. 전신에 30% 가까이 화상을 입은 한국사진작가협회 대구지부 김영록(46) 총무는 동료를 구하려고 불길에 뛰어들었다 큰 변을 당했다. 제대로 대화가 힘든 김 총무는 "여자 작가가 있어 그를 구하기 위해 불길을 향해 뛰어갔는데 너무 거세게 타올라 정신을 잃을 뻔했다"며 "함께 출사를 나간 동료들이 무사한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푸른병원에 입원한 이들은 서울에 거주하는 김창호 학예연구사를 제외하고 6명 모두 대구 사람들이다. 이중 2명이 중태다. 이들 대부분은 얼굴을 마주보기 힘들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고 있었다.

화상전문 푸른병원 김상규 원장은 "이들은 전신을 기준으로 5~30%까지 화상을 입었는데 피부재활 및 이식까지 약 1년 가까이 갈 것으로 보인다"며 "최대한 안정을 찾아야 하며 상처를 좀더 살펴보고 난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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