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산 비슬산] 도동서원 앞 은행나무

▲ 400년 된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웅장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 400년 된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웅장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도동서원 앞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한 그루가 굳건히 서 있다. 수령이 400년 된 은행나무는 어른 5, 6명이 안아도 모자랄 정도로 굵다. 나무는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해 콘크리트 지주 5개가 뻗어난 가지를 받치고 있지만 의연한 자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비슬산을 굽어보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도동서원 뒤편 사당에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과 함께 모셔진 외손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심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강 선생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서원을 선조 38년(1605년) 사림(士林)의 도움으로 이곳에 복구하고 지명을 따 보로동(甫老洞)서원이라 불렀으며 2년 후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자 이를 기념해 입구에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역산해 볼 때 은행나무의 수령이 40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세(樹勢)는 대단해 전국 여느 서원·사찰에서 있는 나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대체로 서원이나 향교 앞에는 은행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공자(孔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으며 유생들의 학문이 은행처럼 주렁주렁 달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은행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전한다. 이곳 은행나무는 마주선 나무가 없어 결실기에도 은행이 달리지는 않지만 가을철 은행잎 단풍은 주변 경관과 어울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달성군 오대진 문화체육과장은 "도동서원은 고종 2년(186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전국 650여개 서원 중 없어지지 않은 47개 중 하나"라며 "홀로 선 은행나무가 마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선현들의 기상이 담긴 모습처럼 웅장하고 기품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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