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정치없는 나라

중국의 요임금은 자신이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고 있는지 궁금하여 하루는 백성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저잣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자의 한 모퉁이를 지나자 아이들이 모여 임금의 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다. "우리 임금님은 백성들을 잘 살피시네. 온 나라 백성들이 부러운 것 없이 살고 있다네. 알 듯 모를 듯 사이에도 우리 모두 임금님 은덕으로 산다네." 그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말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번잡한 저잣거리를 벗어나 도심 밖 한적한 마을로 들어섰다. 그 마을 어귀에는 백발이 다된 노인들이 모여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를 맞부딪혀 승부를 다투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두 손으로 배를 두드리며, "동 트면 일하고 해지면 쉰다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해 먹으니 임금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그제야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넘쳐 궁으로 돌아갔다.

삼천리 방방곡곡이 정치판이다. 도시에서도, 시골 저자에서도, 식당에서도 아는 사람 서넛만 모이면 정치 이야기다. 남정네들은 남정네대로, 부인네들은 부인네들대로 술집에서, 찜질방에서, 계모임에서 정치를 논한다. 학생은 학생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모두 정치 전문가들이다.

심지어 예술가를 비롯한 전문가들 모임에서조차 정치 이야기는 빠뜨릴 수 없는 단골 주제다. 오직 정치 이야기가 없는 곳은 룰렛과 바카라에 여념 없는 정선 카지노나 게임방, 경륜장이나 경마장같이 제 정신을 놓은 사람들이 모여 판돈을 걸고 자신의 생업이 아닌 일에 열중하고 있는 곳뿐이다. 이쯤 되면 가히 온 백성을 호모 폴리티쿠스라 부를 만하다.

이는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리고 멀리 있는 것을 늘 귀하게 여겨 그리워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는 정치를 말하는 이는 넘치되, 정치를 행하는 이는 드물며 너도 나도 온전한 정치에 목마르다는 현실을 나타낸다 할 것이다.

온 백성의 가장 큰 관심거리가 정치인 나라, 정부에서 하는 일마다 백성들이 그 뒤를 의심쩍어 하는 나라, 공권력만으로는 모자라 용역업체 직원들이 용병처럼 공권력을 뒤에서 받쳐주는, 내가 사는 이 나라는 분명 요순이 다스리던 태평성대와는 까마득한 거리가 있으리라.

게다가 이제 요순이 되기를 꿈꾸는 아둔한 정치가는 더 이상 없을 터이니 우리는 언제쯤 정치 없는 나라에서 살게 될까? 지천명을 넘고서도 아직 요순을 꿈꾸는 순진함을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박진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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