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구성서산업단지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직원끼리 인력감축 대상자를 골라야만 하는 눈물겨운 모임을 가졌다. 회사 형편상 직원 10여명 가운데 4명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장의 말에 누구를 내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직원들이 3명을 선정했고 사장이 나머지 1명은 '더 어려워지면 내보내자'며 양보했다. 살아남은 직원들은 적지만 마음을 담은 위로금을 즉석에서 전달하며 함께 울고 말았다.
중산층이 실직 등으로 '신빈곤층'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사회안전망은 관심권 밖이다. 신빈곤층의 자활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사회불안으로 연결되고 이는 우리 사회의 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중산층이 무너진다=지난해 11월 실직한 김모(49·대구 달서구 용산동)씨. 매달 250여만원을 받고 자동차 부품업체에 다니던 김씨는 회사 일감이 격감하면서 직장을 잃고 가정은 엉망이 됐다. 김씨의 아내는 지난 1월부터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시작했다. 대학 3학년인 아들은 이번 학기 휴학을 고민하고 있다. 김씨는 실업급여, 아들은 학자금 융자를 신청할 수 있지만 이 사실을 몰랐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서 이달부터 실업급여를 신청한 상태다.
1t 화물차로 용달업을 하는 이현식(53·대구 남구 대명동)씨. 이삿짐이나 건설자재 등을 운반하면서 한달 100여만원을 버는 것이 전부다. 이씨는 동사무소에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해 봤지만 트럭까지 환산하면 최저생계비(올해 4인가구 기준 132만원)를 웃돈다는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노동연구원과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공식 실업자와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 중 추가취업이나 전직을 원하는 불완전 취업자,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를 포함한 한계실업자, 유휴노동자 등을 합친 실질실업자 규모가 377만명에 달한다. 지난 2005년 이후 360만명 초반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지난 한 해에만 17만명이나 증가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실질실업률 14.25%는 전년에 비해 0.75%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공식실업률(3.2%)에 비해 4배 이상 높다.
특히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률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만큼 실질실업자 수는 400만명을 넘어설 전망. 이는 상당수 중산층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신빈곤층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7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기초수급생활자 150여만명의 두배를 넘는 규모다. 하지만 중산층이 파산·실직 등으로 신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재취업 통로가 최고의 사회안전망=정부는 최근 실직 등으로 신빈곤층으로 몰락하는 중산층이 증가함에 따라 기초생활수급 대상을 금융재산 120만원에서 300만원, 대도시 거주자 총재산 기준을 9천500만원에서 1억3천300만원 이하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 기준으로도 대상자는 극소수에 그칠 전망.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긴급생계구호제도는 휴폐업하거나 사고 또는 질병에 걸린 가장에게만 적용될 뿐 실직 가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현재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에 대해선 기초생활수급, 사회적 일자리사업, 자활근로사업, 긴급생계구호 등의 사회안전망을 가동하고 있다.
대구시 생활보장 관계자는 "현재의 사회안전망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최저생계비 대비 1∼1.2배의 소득이 있는 '잠재 빈곤층'과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고정재산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된 '비수급 빈곤층'인 차상위 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직으로 몰락하는 중산층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최대 150만원까지 지원하는 실업급여제도가 있지만 이는 일시적 지원책일 뿐 신빈곤층이 다시 중산층으로 일어설 수 있는 근본 대책은 아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사각지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자활 프로그램이 대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고용지원센터, 직업훈련 등을 통해 재취업과 창업을 돕고 있지만 기업현장까지 연결될 수 있는 맞춤형 취업연계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또 노동부,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와 지자체 간 분산된 지원 프로그램을 자활 중심의 지원시스템으로 통합하고 대상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
계명대 김영철 교수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될 것인데 일자리가 정부의 기대만큼 창출될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환상이다. 정부와 민간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사회적 합의, 맞춤형 자활 프로그램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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