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지음/가람기획 펴냄
고려말 사회 혼란이 거듭되고 여자가 남자보다 많아지면서 아내를 둔 남자가 또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풍속이 널리 퍼졌다. 조선은 가계 계승의 질서를 강조하는 이른바 '종법(宗法)'을 가족 질서의 원리로 받아들인 사회였다. 아내가 있는데도 또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은 종법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적장자의 가계 계승을 위해서는 적처의 구분은 반드시 선행돼야 했다.
조선 태종 13년(1413), 유처취처(有妻取妻)가 정식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유처취처는 근절되지 않았다. 상류층 남자들이 다처 문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편법을 동원해 여러 아내를 취했다. 돈깨나 있고 계급이 높은 자들에게 여러 아내를 두는 행위는 자기 과시였다. 국가는 급기야 강력한 처벌조항을 만들었다.
'▷처가 있는데도 또 처를 맞이하면 장 90대에 처하고 후처와 이혼시킨다 ▷정처로써 첩을 삼으면 장 100대에 처한다 ▷처가 있는데도 첩으로서 정처를 삼으면 장 90대에 처하고 본래대로 환원 조치한다.'
국가가 나서서 이런 처벌조항까지 만들었을 정도니 조선의 축첩 현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조선의 엄격한 유교 사상과 신분제도는 남성과 여성, 양반과 서민의 성문화를 각기 다르게 만들었다. 어떤 이는 권력이 있기에 유리했고, 어떤 이는 높은 지위 때문에 더 엄격한 규정에 시달렸다. 남자에게는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일부다처가 적용됐고 여성에게는 철저하게 일부일처가 적용됐다는 점도 조선 사회의 특징이다. 아내는 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남편의 축첩은 조선 사회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정처와 첩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고통스러웠다. 첩은 대체로 용모가 고왔고 젊은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기에 유리했으나 정처의 서릿발 같은 시선 아래 숨죽여야 했다. 게다가 언제 식을지 모르는 남편의 애정에 매달려 차별과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정처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투기는 부덕이라는 미명 아래 남편의 애정이 첩에게 쏠리는 기막힌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조선 사회 성문화에서 또 두드러진 특징은 간통이었다. 엄격한 성윤리가 강조되던 만큼 간통에 대한 처벌이 무거웠다. 특히 근친간의 간통은 사형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 사회는 근친 간통이 많았다. 근친에 해당하는 친족의 범위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보다 넓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모와 사위 간의 간통이 많았다. 이는 전통적인 결혼 풍속 탓이었다. 여자가 시집살이를 하는 중국식 결혼 풍속이 정착되기 전까지 남자들이 처가에 들어가 사는 것이 전통적인 결혼 풍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위와 장모 간에 간통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았다. 마찬가지로 형부와 처제, 제부와 처형 사이, 이종사촌 간에 간통이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다.
강간과 화간을 판결한 조선시대 한 수령의 이야기는 남성 위주의 조선사회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마을에 강간사건이 발생했다. 여자는 강간당했다고 주장하고 남자는 화간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을 맡은 수령은 화간과 강간을 구별하기 위해 힘센 종을 시켜 여자의 옷을 벗기도록 했다. 종은 여자의 겉옷을 벗겼으나 여자가 죽기를 각오하고 반항한 탓에 속옷 한 벌만은 벗기지 못했다.
실험이 끝난 후 수령은 "이 사건은 강간이 아니라 화간이다"라고 판결했다. 여자가 죽기를 각오하고 반항하면 속옷을 벗길 수 없음이 증명됐으니 두 사람 간의 사건은 화간이라는 말이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명판결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 책 '조선의 섹슈얼리티'는 조선의 욕망과 성풍속을 통해 조선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다. 단순히 성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성 풍속과 결혼 등을 통해 조선의 모순된 제도와 관습, 인습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312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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