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연쇄살인 범죄 방지하려면

최근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무려 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사건은 마치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감독의 공포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여서 매우 당황스럽다. 필자는 이번 연쇄살인 사건을 보면서 두 번 다시 이런 비참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첫째, 기본적인 사건자료의 수집 및 분석을 최우선으로 하는 수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살인, 강도, 방화 등 강력범의 연쇄 사건이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3년부터 시작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국립강력범죄분석센터(NCAVC)의 발표와 이후 학계의 연구를 통해 이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었다.

특히 NCAVC는 연쇄살인을 정신병질환자에 의한 조직적인 사건과 비조직적인 사건으로 구분하는데, 강호순의 경우에는 조직적인 연쇄살인범으로 보인다. 즉, 조직적인 사건의 경우 범행 동기와 범행 수법이 동일하거나 비슷하며, 피해자와는 낯선 관계로 대부분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 등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살인과 살인 사이에는 일정한 냉각기(Cooling Period)를 거친다. 범행 지역은 주로 자신의 생활근거지 주변이나 도보, 자동차로 이동 가능한 정도를 물색하며, 범행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사체는 유기하거나 은닉한다. 범죄자는 평범한 모습으로 일상 생활을 꾸려나간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이 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경찰이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실종사건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더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히치콕 감독은 영화 속에서 DNA 분석을 행하지 않고서도 사건 정황을 치밀하게 분석, 추리를 거듭해가며 결국 관객이 살인범을 찾아내도록 한다. 즉, 범죄 수사의 기본원칙에 충실했다.

둘째,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 및 교정 정책이 매우 시급하다 하겠다. 2004년 7월의 유영철 및 2006년 4월의 정남규, 최근의 강호순에 이르기까지 연쇄살인범이 검거될 때마다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혹은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라는 진단은 난무하지만 특별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의 로퍼스(Hilger H. Ropers) 및 브루너(Han Brunner)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뇌 속에 모노아민(Monoamine Oxidase A: MAOA)이라는 염색체가 부족할 경우, 공격성, 감정, 인지 능력에 영향을 주는 세로토닌, 도파민, 노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제대로 생산해 내거나 전달해주지 못하여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다는 일명 모노아민 가설을 제시하였다. 다행인 것은 꾸준한 약물치료를 할 경우 그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살인, 강간, 방화 등 일부 특정한 강력범 및 범죄 경력이 많은 교도소 수감자 등에 대해서는 정신의학적 진단을 전제로 한 약물 치료를 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정비하여야 한다. 이미 정신의학계에서는 일부 정신장애자에 대하여 세로토닌이 함유된 약물 치료법을 활용하고 있다.

셋째, 이른바 범죄자 인권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이 있어야 하고, 합의점을 도출할 시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다. 수사기관 등은 범죄자의 실명 및 얼굴 등을 인권보호라는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범죄자 인권의 한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정부는 2007년 말 안양의 예슬·혜진양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지난해부터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범의 신상정보 등록 및 열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신상정보를 열람하려면 관할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야 하며, 그마저도 청소년의 보호자나 청소년 교육기관의 장 등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만 가능하도록 까다롭게 돼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평온한 생활권, 행복추구권, 알권리 등은 범죄자의 초상권 못지않게 소중하다.

넷째, 마지막으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 정책을 현실화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특히 자기 책임이 없는 강력사건 피해자 등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고, 고단해진 그들의 삶을 물질적으로도 보살필 수 있도록 범죄피해자기본법 등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지원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당장 이번에 엄마와 아내를, 그리고 딸 등을 여읜 유가족들이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지역사회의 시스템 구축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허경미(계명대 경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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