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해양경찰청 경비함③

▲ 괴선박 침투 대비 저지훈련 중 특공대원을 태운 고속단정이 출동을 위해 함선에서 바다로 내려가고 있다.
▲ 괴선박 침투 대비 저지훈련 중 특공대원을 태운 고속단정이 출동을 위해 함선에서 바다로 내려가고 있다.
▲ 외모에서부터
▲ 외모에서부터 '바다의 사나이' 다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해경 특공대원 배홍구 순경.

# "미확인 선박, 미확인 선박. 여기는 대한민국 해양경찰. 귀선(貴船)의 현재 위치는 북위 36도 57분, 동경 131도 47분입니다. 귀선의 현재 침로(針路)는 45도, 속력은 15노트입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해양경찰. 감도(感度) 있습니까?"

"여기는 클레인 아틀라스호입니다." 해무(海霧)에 싸여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재시각 1508함과 10~12마일 떨어진 공해상에는 2척의 선박이 항해 중임을 레이더는 알려주고 있다.

그 중 북북동진하는 한 척을 향해 조타실 이수미(37·여) 순경이 유창한 러시아어로 호출사인을 날린다. 계속해서 항해 선박의 국적과 운항목적지, 선박 종류, 승선인원 따위를 묻는다. 러시아 국적의 상선은 컨테이너를 적재하고 블라디보스토크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응답해 왔다.

오늘처럼 해무가 짙게 깔린 날은 전방 시계(視界)가 5㎞도 채 되지 않지만 독도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경비함은 근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움직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이들의 영해 접근을 차단하고 범법행위를 예방하는 것이 1차적 목적.

그러나 해난사고나 응급상황 발생시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는 것도 경비함의 임무 중 하나이다. 1508함의 경우 영어와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에 능통한 직원이 동승해 근해를 지나는 배들을 검문하고 비상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10월에는 러시아 선적 2천500t급 원목 수송선 시네구리에호가 동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때 독도 근해에서 작전 중이던 1508함이 출동해 선원 5명을 무사히 구출하고 원목 5천개를 수거하기도 했다.

해경은 또 최근에는 지난 1월 27일 안타깝게도 고 이상기 경사 실종사건이 발생하자 5천t급 5001함을 이틀간 독도 반경 10㎞ 구간 순회수색에 투입하는 한편, 고속단정을 내려보내 해안을 샅샅이 뒤졌다. 뿐만 아니라 헬기를 띄워 독도 상공을 수십회 저공비행하며 수색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독도 근해에서 일어나는 괴선박의 월경(越境) 저지와 구조활동의 첨병으로는 언제나 해경 특공대가 몸을 던져 작전에 나선다. 1508함에는 현재 O명의 해경 특공대가 배속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해군 해난구조대와 해병수색대 등 특수부대 출신들로 수영과 잠수, 수중구조 특기를 가지고 해난구조와 응급처치 등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함대의 촉수 역할을 하고 있다. 해경 특공대들은 과거에는 각 함대에 파견근무를 했으나 지금은 함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2005년 해경에 몸을 담으면서 1508함 처녀항해 때부터 승선했던 특공대원 배홍구(34) 순경은 이 배의 산증인이다. 러시아 원목선 침몰 때는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선원들을 구조했고, 2006년 일본 해양조사선이 독도 근해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던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10여 척의 함정이 합동작전을 펼칠 때도 동참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였습니다. 독도에서 작전을 마치고 모항으로 귀항했는데 하선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함상에 두 시간 가까이 대기하고 있는 동안 급유를 하더니 곧바로 다시 출동명령이 떨어진 겁니다. 육지에 발을 디뎌보지도 못하고 서해로 출동해서 15일간 기름제거작업에 투입되었던 거죠. 나뿐만이 아니었지만 그해 연말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습니다."

3년 3개월여 1508함과 동고동락한 배 순경은 이번 출항 이후 함상에서 인천해양경찰서로 발령통보를 받았다. 5일 후 귀항과 동시에 인천 영종도로 떠나야 한다. 결혼 3개월째로 아직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는 배 순경은 맞벌이하는 신부를 강원도 삼척에 떼어놓고 가야 한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은 저희들의 운명이죠. 특히 해경은 경찰서가 인천·부산·동해·포항 등 전국 해안도시로 흩어져 있고, 보통 2년 주기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전국을 돌며 근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임신해 입덧을 시작한 신부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힘들지만, 해양경찰로 온 국민의 염원이 담긴 독도 수호의 파수꾼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동해의 거친 물결은 경비함 고물 위를 타넘고 바다는 막막하다. 오늘은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 이 순간 1508함은 젊은이들의 순정(純正)한 피를 동력으로 남남동으로 항진하고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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