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가명·39·여)씨와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취재 약속을 정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데다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한 마디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온몸이 종양 덩어리인데 살아야 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프지 않으면 지금만큼만 살아도 행복해요. 언젠가 애들이 한 번은 찾아올 거 같고요. 그때까지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지요.'
최씨는 취재가 끝나갈 무렵 마른 눈물을 흘렸다. 눈물샘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2번의 뇌종양 제거 수술과 몸 안 곳곳에서 불거지는 종양 덩어리는 최씨의 신경을 조였다. 최씨의 얼굴은 둘로 나눠져 있었다. 왼쪽은 마비가 됐고 오른쪽만 과거의 잔상이 남아있었다.
"이게 저예요"라며 쑥 내민 사진첩. 얼핏 보기에도 과거 최씨의 미모는 대단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찍은 사진들이었다. "대학 다닐 때 찍은 것들"이라고 소개한 최씨의 마비된 뺨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각장애 5급, 청각장애 2급, 지체장애 2급의 최씨에게 장애가 찾아온 건 둘째 아들을 낳은 이듬해인 1998년. 그해 8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부터였다. 20시간의 대수술을 2번이나 치러야 했다. 그 후 4차례의 수술이 더 이어졌다. 진전은 없었다. 외려 수술을 거듭할수록 사지가 하나씩 마비됐다. 온몸에 종양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연결돼 퍼지는 '다발성 신경섬유종증'까지 일어났기 때문이다.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믿고 의지하던 남편마저 등을 돌린 것. 결혼 6년 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병에 걸린 최씨를 끝까지 돌봐주겠다던 시댁에서는 10년간 매달 50만원씩 생활비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18개월 후부터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최씨는 혹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말도 꺼내지 못한다고 했다. 전 남편은 이혼 후 2달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렸다.
"이혼하고 6개월 후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학교 앞에서 몰래 기다렸어요. 시댁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한 번만 더 학교로 찾아오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겠다더군요. 아이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그리움과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그마저 없애버렸어요." 최씨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병에 걸렸다는 자책감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병이 친정 식구 모두에게 일어났다는 점. 친정 삼남매의 마지막 보루였던 오빠(41)마저 올해 초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때문에 최씨는 가족력이라는 자책감에 빠져있었다.
취재를 이어가던 도중 최씨의 마비된 볼도 상기됐다. 말을 많이 할수록 호흡이 가빠졌다. 종양이 커져 신경은 물론 호흡기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씨는 움직일 때마다 앓는 소리를 냈다. 힘을 주려는 건지, 아픔에서 나온 소리인지 모를 '끄응' 하는 소리가 내내 떠나지 않았다.
고액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는 최씨에겐 호흡보조기가 절실하다. 몸 곳곳에 종양이 있어 제거하기 위해 1억원이 넘는 돈이 든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었다. 병원에서는 "한군데를 도려낸다고 낫는 게 아니다. 중환자실 경비도 만만치않다"며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 10여차례의 수술을 받고 방사선치료까지 하기엔 최씨의 부담이 너무 크다. "수술 않고 버티려니 너무 아프고 숨쉬기도 힘들어 호흡기에라도 의존하려는 것"이라는 최씨.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최씨는 근육병, 다발성경화증, 유전성운동실조증, 뮤코다당증, 부신백질영양장애자에게 지원되는 호흡보조기 대여사업 대상이 아니다. 호흡보조기의 월대여료는 80만원. 장애수당 16만원과 생계수당 36만원을 받는 최씨에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장 내일 죽을 거 같은데 그렇지가 않네요. 살아야 할 이유요? '사는 게 더 좋으니까'요. 더 큰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모든 걸 갖췄던 아가씨가 모든 걸 잃은 아줌마가 된 지금. 최씨에겐 삶의 고단함이나 힘겨움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부분처럼 보였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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