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황금사원

인도 펀자브주 암릿사르에 있는 황금사원은 BBC방송이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곳 50'에 선정할 만큼 이름난 곳이다. 8천만 시크교도의 성지로 사원에 서린 신성한 분위기와 화려한 조형미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황금사원에는 피의 역사가 뚜렷이 남아 있다. 1984년 시크교 강경파들이 사원을 점거해 분리독립 투쟁에 나서자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가 정부군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면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다.

황금사원의 참극은 시크교도들의 무장투쟁이 빌미가 됐다. 하지만 인도 정치인들의 조바심도 비극의 주요 원인이다. 불과 30여 년 전 파키스탄,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이 인도에서 떨어져 나가고 갈라지는 것을 그들은 지켜봤다. 그래서 강경진압을 서둘렀고 그 여파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성지 모독에 대한 시크교도의 분노가 결국 인디라 총리 암살을 부른 것이다. 반복되는 인도의 유혈 분쟁에서 그들이 믿는 다양한 종교의 본질과 비폭력 평화주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결국 자진 사퇴했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지만 용산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1969년 도쿄대 '야스다(安田) 강당 사건'을 언급했다. 이제 과격 시위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 게다. 성급한 공권력 집행이나 행정 만능도 따져 볼 문제이지만 철거민의 눈물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폭력의 정체에 대해 곱씹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의 사퇴가 용산 참사의 후유증을 최소화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책임자 사퇴는 정치적 판단의 또 다른 방편일 뿐이라는 일각의 목소리가 이런 의구심에 한몫하고 있어서다. 공직자의 사퇴를 아무리 가볍게 본다 하더라도 책임지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절실한 것은 서로의 불신이 극한의 충돌로 치닫지 않도록 배려하고 조정하는 사회적 힘이다. 국민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거나 억울하게 피해 보지 않게 막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도 아쉽다. 법치를 무시한 과격 시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의 바른 작용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각성 없이 공권력의 명분만 앞세우거나 폭력이라는 이름의 화염이 계속 우리 주변을 도사린다면 용산 참사에서 얻을 교훈은 많지 않다. 용산 사태가 황금사원의 전철을 밟을지 야스다 강당의 경우처럼 시위문화의 전기가 될지는 우리가 어떤 공감대를 갖느냐에 달렸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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