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울지 못 하는 사람들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한 해가 되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세상은 너무 깜깜하다. '이렇게 막막할 줄 알았다면 진작 잘해드릴 것을….' 아픈 후회가 매일매일 가슴을 친다. 지금은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지만, 눈을 감으신 날은 오히려 담담했다. 빈소가 차려지고 조문객들이 밀려오자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눈물은 흘릴 수 있었다. 누가 있든 말든 그렇게 울었던 일이 또 있을까 모르겠다. 그 며칠 동안은 내가 아무리 울어도 달래는 사람은 있었지만 나무라지는 않았다. 눈물을 흘려도 흘려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없는 그곳은 울기에 참 편한 곳이었다.

그러나 장례의식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울지 못했다. 가슴만 터질 듯 답답하고 아팠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내가 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급기야 산소에 달려가서 통곡하는 방법을 찾았다. 한 번 가고 또 가고 그렇게 나의 불효에 대한 후회와 슬픔을 덜어내려고 싸웠다. 오로지 혼자서 싸워야만 했다. 실컷 울 수 있는 의식이나 관습은 아무 데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모상을 입으면 적어도 1년은 삭망전(朔望奠)을 지내며 곡하던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폐습이라는 이름으로 부서진 그 제사가 참으로 아쉬웠다.

상을 나는 것은 망자에 대해 갖추는 예의라기보다는 상주를 위로하고 배려하는 관습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안다. 자식이 못다 한 효도를 하면서 혼백과 더불어 화해하도록 정해준 기간이었다. 빈소에 들러 생전에 못해 드린 쌀밥과 고기 반찬을 올리고 울면 이웃도 함께 와서 울었다. 남의 빈소에서 곡하며 실컷 눈물을 흘려 자기 설움을 털어내었고 상주도 슬픔을 조금씩 지워나갔던 것이다.

또 그것은 상주에게 면죄를 주는 기간이기도 했다. 부모를 잃은 사람이기에 다소 잘못을 하거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저질러도 주변 사람들이 이해를 하는 것이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판단력을 잃는다. 그런 심리를 옛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은 실수도 용서받지 못한다. 상주를 대하는 예법이 사라진 세상이라 울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뿜어내지 못한 억압된 감정이 독으로 쌓여 병이 나면 정신과로 간다. 현대인들은 울지 못해서 우울증 환자가 되고, 울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야 한다. 우는 데도 돈이 드는 세상이다.

신복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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