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심 재생' 주민에 정책 주도 역할 맡겨라

[대구 도심 재창조] (18)공공디자인-(하)주민 참여가 성공의 열쇠

▲ 지난 7일 대구 중구 도시대학 수업에서 주민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지난 7일 대구 중구 도시대학 수업에서 주민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도심의 공공시설물들은 최근 조금씩 진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흉물스러운 부분이 많다. 최고의 공공디자인은 주민들의 생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씩 바꿔가는 일이 시급하다.
▲ 도심의 공공시설물들은 최근 조금씩 진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흉물스러운 부분이 많다. 최고의 공공디자인은 주민들의 생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나씩 바꿔가는 일이 시급하다.
▲ 중국 상하이 M50 예술촌 모습.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개발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해 중국 최고의 예술촌으로 거듭난 사례로 도심 재창조에 주민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하고 있다.
▲ 중국 상하이 M50 예술촌 모습.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개발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해 중국 최고의 예술촌으로 거듭난 사례로 도심 재창조에 주민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하고 있다.

1930년대 방직공장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중국 최고의 예술단지가 된 상하이 M50 예술촌은 지역 개발에 주민들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공장 내부에 작가들의 작업실, 스튜디오, 화랑 등을 넣은 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자 예술촌 주변에 상가, 주택 등을 새로 짓는 개발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때 주민들은 부수고 새로 짓는 개발보다는 옛것을 고스란히 살려두는 방식으로 개발되기를 정책 입안자들에게 요청했다. 상하이시 정부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일대는 가장 중국적이면서 첨단을 걷는 예술촌으로 변했다. 상가,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등도 기존의 건물 외형을 그대로 둔 채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서만 입주할 수 있었다.

M50 진웨이동 예술촌장은 "주민이 땅을 딛고 사는 곳을 변화시키려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곳처럼 주민들의 고민과 불만, 아이디어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도심 재창조 사업을 추진했다면 겉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데 그쳤겠지요. 하지만 지금 이곳의 유지, 관리는 주민들이 합니다. 주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며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우리는 예술촌과 예술촌 주변에 대한 회의를 개최할 때마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기관, 예술가, 건축 설계사뿐만 아니라 되도록이면 많은 주민들을 초청해 머리를 맞댑니다. 회의 내용은 무조건 공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상하이시는 M50 예술촌 인근의 공공디자인을 위해 '3불정책'을 단행했다. M50 예술촌의 ▷토지종목 변경을 불허한다 ▷건축구조물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 ▷M50 주변부 문화창조사업을 명목으로 공공용지를 상업용지로 바꿀 수 없다. 모두가 주민들의 머리에서 나온 얘기다. 정부는 다만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도심 재생에 몰두할 뿐이다.

◆주민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라

대구 도심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대구시와 중구청,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걷고 싶은 동성로를 위한 동성로공공디자인개선사업이, 하반기에는 대중교통전용지구(대구역~반월당) 조성이 끝난다. 대구시는 도시 간판 개선사업을 시작했고, 중구청도 도심 골목 디자인 개선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수렴하지 않은 탓이다.

중구 성내2동 강정일 주민자치위원장은 "주민들이 자신들의 거주 공간 디자인을 어떻게 바꾸고 싶어하는지부터 묻지 않고 일방적인 행정만 계속한다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종로골목, 약전골목의 경우 주민 스스로 토론하고 자체 설계를 통해 개발,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종로골목의 전통찻집 약전 대표 신정희씨는 "공공디자인을 통해 도심 재생을 이뤄내려는 공공기관의 의욕이 반드시 원안대로 되는 건 아니다. 전통공연, 바자회, 공예체험, 축제 등 주민 스스로가 창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 물은 뒤 공공디자인이라는 하드웨어 설치가 뒤따라야 한다"며 "대구시와 구청, 전문가들은 먼저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스타벅스보다 종로의 전통찻집이 낫다는 홍보부터 해달라"고 주문했다.

세계 각국 도시들은 도심 재창조를 추진할 때 저마다 가진 독특한 배경과 역사성부터 들여다봤다. 도심이 어떻게 성장과 쇠퇴를 거듭했는지 주민들에게 묻는 일은 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됐다. 특히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은 추진 이후에 따르는 유지, 관리를 주민들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주민이 주도하는 실행기구나 조직을 만들고 이어 법, 제도를 정비한 뒤 각종 행정·물량 지원을 하는 과정이 '도심 재창조의 정석'이 된 것.

우리나라에서 도심재생에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시내의 공공시설물 디자인을 통합하고 개선하기 위해 택시 승차대, 택시 승차 위치를 알려주는 폴사인, 퍼걸러(정자 형태의 쉼터) 등 3개 종류의 공공디자인을 시민들에게 현상공모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을버스 폴사인, 방호울타리, 보행조명시설 등에 대한 디자인 설계공모를 실시했고 이를 통해 현재 표준형 디자인을 개발 중이다. 대전시도 도시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유지, 관리, 창조해 나가기 위해 민·관·학 협의체로 구성된 도시디자인분야 '전문 싱크뱅크 대전광역시 도시디자인 포럼'을 발족했다. 공공이 주도하는 도시디자인에서 시민이 함께하는 도시디자인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도시대학이 도심 재창조의 단초

대구 중구청이 기초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지원한 제1기 주민참여형 도시대학이 오는 14일 수료식을 갖는다. (재)대구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이 대구대와 공동 주관으로 마련한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대학'의 운영 성과는 놀랍다.

당초 14명을 목표로 했는데 지원자가 넘쳐 36명이 수강했다. 그 중 19명이 주민이고, 7명이 관련 공무원이다. 출석률도 평균 90%를 넘겼다.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수료했다. 종로·진골목과 봉산문화거리 두 팀으로 나눠 현장답사와 사례연구를 마쳤다. 도시대학 운영진들은 학생들의 성과물 중 실현가능한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도시대학은 공청회 수준에 머물던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완전히 바꿨다. 주민들이 직접 고민을 토로하고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참여의 장'을 펼친 것이다. "내 집과 이웃을 이렇게 바꿔달라"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었다. 또 관 주도의 도심개발이나 정비보다 '보전을 통한 변화'를 목말라하는 주민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주민들의 동의와 참여가 오히려 행정에 가속도를 붙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다.

도시대학을 운영한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홍경구 교수는 "행정기관의 정책을 전부 주민들에게 오픈(open)하고 공유한다면 시행 초기에 주민들의 중지를 모으는데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합의를 이룬 뒤에는 실행력과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며 "도시대학을 통해 행정기관과 주민이 얼마든지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고, 주민 스스로도 집이나 상가를 팔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 가꾸고 발전시키며 사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번 제1기 도시대학에서는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테마형 도시개발' '도시 정체성을 찾는 장소 만들기' '동성로 공공디자인 추진방안' '삼덕동 마을만들기 운동' 등 작은 공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공공디자인의 목표는 사람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적 한옥마을인 서울 북촌은 주민들의 합의와 참여가 없었다면 보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서울시와 전문가, 뜻있는 시민들이 나서 한옥등록제를 도입하고, 주민들의 요구대로 서울시가 일부 한옥을 매입해 문화공간이나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하는 과정을 통해 서울의 간판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북촌 가꾸기 사업을 기획·추진했던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정석 교수는 "북촌의 디자인을 보전하기 위해 수천명의 주민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고 그들의 염원이 회신됐다"며 "거주자 우선주차, 각종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됐고 주민들이 주도하는 전통문화 체험행사가 개최돼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참여가 공공예술 등 공공디자인 사업의 유지, 관리에 꼭 필요한 단계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울 대학로에서 이화동을 지나 낙산공원 정상까지 펼쳐진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경우 일부 작품이 훼손되는 실패를 겪었다. 국립국제교육원 담벼락에 있던 동상이 사라지고, 담벼락에 붙은 미술품이 도난당하는 동안 주민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월간퍼블릭아트 편집장)는 "주민들과 호흡을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예술이 단지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면 목적과 당위성을 잃고 만다"며 "모든 공공디자인 정책은 주민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거주민의 삶을 미화시키기보다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디자인의 목적은 사람에게 있다.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조화를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구YMCA 김경민 사무총장은 "행정기관은 공청회에 참여해달라고 한 뒤 정책 홍보에만 열을 올리지만 기획-설계-시공-관리까지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텅 빈 기초 위에 큰 건물을 올리는 꼴이어서 실패할 공산이 크다"며 "주민 참여는 실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수단이며 도시재생학교, 마을학교, 마을생태학교 등 주민의 리더십을 발굴하고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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