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예천 회룡포

해질무렵 빛나는 모래알'옥빛 강줄기 '황홀'

예천이 주는 첫 인상은 단아하다. 안동을 지나 예천 땅에 들어서면 고즈늑한 전원풍경이 시야를 메운다. 소백산맥 기슭에 위치한 까닭에 마을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산들도 하나같이 모나지 않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산들은 높지 않지만 반듯하다. 꼿꼿한 선비의 기상이 묻어난다. 물 맑고 인정 많은 충효의 고장이라는 명성이 그냥 붙은게 아닌 듯 했다.

예천은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볼거리가 곳곳에 널려 있다. 속내를 감추고 있는 다소곳한 새색시를 연상시킨다. 대표 명승지는 바로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回龍浦). 회룡포는 비상하는 용처럼 물이 마을을 휘감으며 돌아나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 남쪽으로 흘러가다 길을 막아선 비룡산을 만나자 350도 돌아나가며 거대한 육지 속 섬을 만들었다. 물길 끝에 뭍이 데롱데롱 메달려 있는 형국이어서 금방 똑 떨어질 것 같다.

회룡포의 진면목을 보려면 곧장 회룡포마을로 가지말고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안동IC에서 빠져 예천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회룡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나타난다. 내성천을 가로지는 다리를 지나 장안사'회룡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을 잡으면 이내 장안사 턱밑 주차장에 닿는다.

경사가 심한 비탈길에 '비룡산 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린 범종각이 하늘에 걸린 듯 서 있다. 장안사는 하천을 낀 절벽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 터가 넓지 않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759년(신라 경덕왕 8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조사가 창건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기 위해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최근까지 여러차례 중수해 옛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범종각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이내 중창불사의 흔적인 대불이 눈에 들어오고 회룡대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바람을 벗삼고 왼편 솔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는 회룡포를 바라보며 100m만 오르면 회룡대다. 회룡대에 올라서면 거대한 모래사장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회룡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외지 사람들이 의성에 있는 마을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 '회룡포'라 부르게 됐다.

회룡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물돌이동(물이 돌아나가는 마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길로 30여km 떨어진 안동 하회마을의 물돌이와는 격이 다르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의 물돌이가 반달 모양이라면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회룡포는 보름달에 가깝다. 회룡포는 절경만큼 풍수학적으로 명당이라 한다. 낙동강과 금천을 만나 삼강(三江)을 이루는 내성천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태극 모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회룡대에는 회룡포 사계를 담은 사진과 함께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장안사에 머물며 지었다는 시 한수가 붙어 있다.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긴 칼차고 멀리 나갈 때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한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맑게 갠 절 북쪽으로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달이지는 성 서쪽 대나무숲에는 안개가 깊구려/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옛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잦아드네/ 이규보가 보았던 장안사와 회룡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빼어나지만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진 회룡포마을을 직접 둘러 보는 것도 특별한 재미다. 회룡포마을은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 사람들만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강판을 잇대어 만든 일명 '뽕뽕다리'를 건너야 한다. 뽕뽕다리 위에 솔가지를 얹고 내성천 고운 모래를 덮어 놓았다. 해질무렵 유난히 빛나는 모래알과 바닥을 훤히 드러낸 옥빛 강줄기가 빚어내는 조화는 아름답고 황홀하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의 장소 같다. 회룡포는 관광지가 아니어서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이 없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칼국수와 도토리묵 등을 판매하는 간이음식점이 하나 있다.

#다양한 볼거리 "왜 몰랐을까?"

◆세금 내는 나무들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 수령 500년의 팽나무,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黃木根)은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세금도 낸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39년 마을 사람들이 쌀을 모아 마련한 공동재산인 토지를 팽나무 앞으로 등기이전하면서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이 5월에 누른 꽃을 피운다 하여 황씨 성, 근본 있는 나무라는 의미에서 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것.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인 황목근은 현재 1만2천232㎡(3천700여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감천면 천향리에도 세금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石松靈)이다. 소나무의 한 품종인 반송으로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부귀'장수'상록을 상징하는 우산 모양의 이 나무는 600여년 전 홍수로 떠내려 오는 어린 소나무를 주민이 건져 심었다고 한다. 1930년경 자식을 두지 못했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 명명하고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상속, 등기해 주었다고 한다.

◆삼강주막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합류하는 삼강나루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다. 예로부터 삼강나루는 서울로 통하는 길목으로 물류 이동이 활발했다. 보부상, 길손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장날이면 나룻배가 30여차례 다닐만큼 분주했다. 삼강주막은 나들이객들의 허기를 면해주고 쉴 곳을 제공해주는 휴식처였지만 나루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경북도는 낙동강 1천300리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조선시대 주막인 삼강주막과 1934년 대홍수로 소실된 보부상'사공숙소를 복원하여 관광객을 받고 있다. 옛 보부상이 그러했듯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으례히 전과 묵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다. 삼강주막 옆에는 화려했던 세월을 기억하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변함없이 서 있다.

◆선몽대

예천 호명면 백송리 내성천변에 있는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 이열도가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고 1563년 지은 정자로 조선 중기 퇴계 이황과 학맥이 닿은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중요한 곳이다. 당대의 석학인 이황을 비롯해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운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 전해오고 있다. 퇴계 선생이 '선몽대'란 세 글자를 쓰고 시를 보내주자 이 시를 차운하여 이열도 정탁 류성룡 김상헌 이덕형 김성일 등이 시를 남겼다고 한다.

선몽대숲은 넓지는 않지만 수령 300년이 넘어 보이는 잘 생긴 노송을 중심으로 단풍'은행'버드나무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성천변에 서면 눈 앞에 평사십리(平沙十里)의 길고 넓은 모래밭이 펼쳐진다.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선몽대는 계절에 따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면 부드러운 신록의 아름다움, 여름이면 울창한 수목이 만들어 낸 시원한 나무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흰 눈이 찾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여름에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봉서농원에 연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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