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남(59·여)씨는 품에 안은 고교 졸업장을 한시도 떼지 않았다. 늦깎이 학생으로 치열하게 공부한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경북 상주에서 매일 오전 7시 20분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싣고 학교 수업을 받은 뒤 오후 8시 기차를 타고 다시 상주로 돌아가는 생활이 어느새 4년째다.
이씨는 "자정에 눈을 붙이고 아들의 아침 준비와 점심 도시락을 챙기느라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며 "처음엔 너무 힘들어 쓰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석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정에 큰 불행이 찾아와 몇차례 자살 시도도 했다는 이씨에겐 '공부'가 유일한 탈출구였다. 한차례라도 결석하면 다시 우울한 생활로 돌아갈까 악착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고교 졸업과 함께 김천대 한방보건복지과에 입학할 예정이다.
11일 오후 한남 중·고교(대구 달성군 화원읍) 졸업식장. 10대들이 아닌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나 20대들이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졸업식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정화(51·여)씨도 지난 4년(중·고교 과정)을 생각하며 연방 눈가를 훔쳤다. 어릴 때 못 배운 것이 한(恨)이 돼 2005년 두번째 도전 끝에 입학한 그녀였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시어머니가 2년 전 뇌종양으로 몸져누웠다. 정씨는 그때부터 시어머니 간병을 위해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숙식을 했다. 정씨는 "다행히 남편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석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시어머니 병수발뿐 아니라 틈틈이 깡통이나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같은 반 학생의 급식비까지 지원했다. 정씨는 "젊은 학생들을 보면 왠지 아들이나 딸 같아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새터민(탈북자)인 김모(25)씨에게도 졸업장의 의미는 남다르다. 고아로 자란 그는 친구들과 2004년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숨어지냈다. 김씨는 "원래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을 하려고 학원을 잠시 다녔으나 외래어와 어휘에 익숙지 않아 적응을 못했다"며 "아는 사람 소개로 지난해 이 학교로 편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낮에는 인쇄물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학교 수업을 듣는 열정으로 1년을 보냈다. 그는 다음 달 대구공업대 사회복지과에 입학한다.
2001년 설립된 한남중·고교는 학교 공부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로 중·고교 과정이 각각 2년씩이며 학력인정 학교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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