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할인 아파트, 뚜껑 열어보니 '그럴만'

'반값 아파트는 없나요.'

요즘 부동산 업소 종사자들은 고객들의 황당한 질문을 자주 받고 있다. 집을 사러온 매수자 상당수가 통상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의 할인 아파트를 찾기 때문.

부동산 업소 관계자들은 "20~30%는 기본이고 심지어 30~40%까지 할인된 신규 아파트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문의를 하는 매수자들이 있다"며 "대다수가 근거 없는 뜬소문이지만 워낙 저가 매물이 많이 쏟아져 나온 탓에 매수자의 할인 기대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져 있다"고 밝혔다.

◆할인 아파트 진실은

대구지역에 할인 아파트가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2007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주택시장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일부 시공사들이 자금난 해소를 위해 준공 후 악성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할인판매를 시작한 것.

기존 계약자 반발 등에 따른 부작용으로 아파트 할인 판매는 물밑 거래로 진행돼 공식적인 할인율은 없지만 통상 20% 안팎 수준에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물론 극소수 아파트지만 할인율이 30%까지 내려간 곳도 등장했다.

하도급 업체가 대물로 받은 아파트나 기존 계약자가 싼값에 내놓은 아파트를 빼고 대구에서 시공사가 미분양 할인 판매에 나선 곳은 4, 5개 단지 정도. 지역에서 입주 후에도 미분양이 남아 있는 단지가 50여곳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할인 아파트 비율은 10%에 불과한 셈이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 원리가 주택시장에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할인율이 높은 미분양 아파트의 경우 대다수가 '악화'로 평가받는 매물. 상대적으로 입지가 나쁘거나 분양가가 높았던 단지, 또는 선호도가 낮은 저층이나 향이 나쁜 아파트들이다. '양화'의 경우 할인 아파트가 거의 없거나 할인율도 기존 계약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내놓은 매물과 시세가 같은 10% 전후다.

문제는 악화가 등장한 이후 양화까지 저평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

부동산 업소 관계자들은 "몇개 단지가 할인 판매를 시작한 후 요즘은 웬만한 입주 아파트는 모두 할인 판매가 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가격도 30~40% 할인이 기본으로 통용될 정도지만 실제 이 정도 가격의 할인 매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입주 전 아파트의 경우 할인 소문은 대부분이 뜬소문들이다.

시공사 관계자들은 "솔직히 입주 전에 분양가를 할인하면 기존 계약자 중 입주 때 정상적으로 잔금을 납부할 계약자가 몇명이나 되겠느냐"며 "시공사 대부분이 할인 판매보다는 전세 분양을 선호하며 일부 시공사가 할인을 하더라도 입주 시작 3, 4개월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수요자의 고민

할인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실수요자들은 상당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부동산 시장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각종 소문까지 떠돌면서 정확한 매수 시세를 파악하기 힘든 탓이다.

공인중개사협회 정용 대구지부장은 "신규 아파트 할인율이 30~40%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이후 일부 매수자들이 아파트의 객관적인 조건을 따지기보다는 할인율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며 "할인율이 높은 아파트는 꼼꼼히 따져보면 결국 그만한 원인이 있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실제 할인율에는 상당한 함정이 있다.

입주 때까지 계약률이 70%인 단지라면 사실상 선호도가 높은 동·호수는 계약이 대부분 이뤄진 셈이다. 남은 30%는 저층이거나 향이 나빠 일조권이나 조망권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파트들이다.

실제 대구에서 20% 이상 할인 판매에 나선 단지 중 상당수가 규모가 200여 가구 안팎의 나홀로 아파트나 북향이나 서향인 경우가 차지하고 있다.

분양 대행사 한 관계자는 "정상 분양 때도 저층이나 향이 나쁜 아파트는 할인율이 적용되며 일반 부동산 시장에서도 같은 단지라도 선호도에 따라 가격이 10~20% 정도 차이를 보인다"며 "결국 준공후 미분양으로 남아 할인 시장에 나오는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도 시세 형성이 낮은 아파트들"이라고 밝혔다.

분양 가격도 따져봐야 한다.

분양 시장이 호황기 때인 2005년에서 2006년에 분양한 아파트의 경우 정상 시세를 무시한 고분양가 아파트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수성구의 경우 3.3㎡당 1천만원, 달서구에서 3.3㎡당 800만원을 넘어 분양한 단지 중 일부를 빼고는 주변 기존 아파트 시세와 분양 당시 가격이 30~40% 차이를 보인 곳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즉 입지를 무시하고 고분양가를 책정한 단지의 경우 할인율이 20~30%라고 하더라도 이미 분양가 책정에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시장 가격으로 볼 때 할인율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입주 물량이 많고 가격도 낮은 지금이 어떻게 보면 가장 적절한 매수 시점"이라며 "지나치게 가격이 낮은 아파트는 결국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도 가격 형성이나 상승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나치게 할인율에 매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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