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가 판매에 재능이 있는 줄은 잘 몰랐어요. 관광객들의 반응이 좋아 판매 실적이 올라가면 뿌듯해집니다."
일본 벳푸의 면세점에서 일하는 양병준(28)씨는 면세점 내에서 판매 능력이 뛰어난 직원으로 통한다. 주로 관광객인 고객들의 마음을 잘 읽고 원하는 상품들을 친절하게 잘 설명해 그가 맡은 상품 판매 코너에는 손님들이 늘 끊이지 않는다. 온천으로 유명한 벳푸에는 중년층 이상의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그는 때때로 '~하지예'라며 고향 사투리로 고객들에게 다가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의 고향은 경북 청도이다.
그는 영진전문대 관광계열 일본어과 졸업반이던 2005년 하반기에 영진전문대와 취업 연수 및 인턴 협정을 체결한 일본관광공사의 인턴 직원으로 뽑혀 벳푸 면세점에서 3개월간 일했다. 2006년 2월 학교를 졸업한 뒤 그 해 4월부터 일본관광공사의 정규 직원이 됐다. 후쿠오카 면세점에서 1년간 일했고 2007년 4월부터 벳푸 면세점의 주임으로 승진한 뒤 6개월 만에 팀장, 한 달 만에 다시 도쿄 면세점의 지점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승진이 빨리 이뤄져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도쿄 면세점장이 되면서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져 부담감도 컸지만 '내 집'에 손님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가 빨리 승진한 데에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임이 되면서 판매 외에 직원 교육까지 맡게 된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 직원을 양성하는 한편, 일본에 관광객을 인솔해 오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와 끈끈한 인간 관계를 맺는 데 적극 나섰다. 이때부터 한국인 관광 가이드들과 관광객들 사이에 그에 대한 호평이 쌓이기 시작했다. 팀장으로 승진한 뒤로는 한국의 인터넷 쇼핑 인기 상품과 한국 관광객들의 쇼핑 성향을 잘 파악해 면세점 내의 제품 디자인을 개선하자거나 화장품, 전자제품, 의류, 공예품 등 제품 교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제시하는 등 감각도 발휘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더 잘 발휘하기 위해 1년 만인 지난해 11월 도쿄 면세점 지점장 업무를 자진해서 그만두고 벳푸 면세점의 팀장으로 다시 일하고 있다.
양씨가 일하는 (주)일본관광공사는 1993년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일본 유학생 출신인 구철모 대표이사가 설립했다. 회사 이름이 '공사'이지만 일본 정부와는 관계가 없는 일본식 회사 명칭이다. 구 대표이사가 당시 한국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찾아오는 지역이었던 벳푸의 면세점 상권을 중국의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자 그 틈을 파고들기 위해 회사를 세웠다. 지금은 본사 격인 벳푸를 비롯해 후쿠오카, 도쿄, 오사카, 쓰시마, 홋카이도 등 6개 지역에 면세점이 있으며 면세점별로 8~15명의 한국인 및 일본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일본관광공사는 일본의 백화점 면세점을 주로 이용하던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등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구 출신인 구 대표이사는 양씨에 대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직원으로 앞으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양씨가 일본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축구와 관계가 있다. 청도 모계중과 모계고교 재직 시절 축구를 좋아한 그는 경북 도민체전에 청도군 축구 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도 있었다. 그는 한국의 프로축구 K리그도 좋아했지만 일본 J리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위성방송으로 일본 축구 경기를 즐겨 보던 그는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택했고 나중에 일본에 가서 축구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영진전문대에 진학, 일본 관광업과 관련한 실무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방향은 바뀌었지만 결국 일본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요즘도 휴가 기간(일본은 4, 8, 12월에 1주일 정도의 연휴가 있다)에 도쿄 인근 사이타마의 J빌리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J리그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알리며 장차 J리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J빌리지는 한국 남해의 스포츠빌리지처럼 일본 J리그의 프로팀들이나 아마추어 축구팀, 간혹 국내 축구팀들이 찾아오는 전지훈련 캠프이다. 그와 함께 한국에 가려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관광업체를 운영하려는 장래 계획도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고향인 청도에 부모님과 남동생이 살고 있어 장남인 그는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떠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외에 진출한 다른 젊은이들처럼 결혼 문제로 고민하기도 한다. 아직 여자 친구는 없지만 일본인 여자 친구를 사귀어 결혼할 경우 한국에 돌아가면 문화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이다.
그는 "일본에 처음 와서 1년 동안은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 생각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이제 완전히 정착했다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면 더 잘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커졌습니다"라고 말한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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