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해양경찰청 경비함④

▲ 1508함의 세 여경 강경숙 경장, 이수미 순경, 노희숙 순경(왼쪽부터)이 낮시간 오랜만에 선실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 1508함의 세 여경 강경숙 경장, 이수미 순경, 노희숙 순경(왼쪽부터)이 낮시간 오랜만에 선실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 모처럼 바다가 고요하자 휴게실에 비치된 러닝머신 위를 천천히 걷고 있는 전재선 경사.
▲ 모처럼 바다가 고요하자 휴게실에 비치된 러닝머신 위를 천천히 걷고 있는 전재선 경사.

# 바다가 늘 표독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늘처럼 구름이 낮게 깔린 날, 하늘이 바다를 엎어놓고 짓눌러 바다는 겨우 숨을 할딱거린다. 독도를 향해 순환류로, 역류로, 순류로, 와류(渦流)로 밀고 들던 물결들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어쩌면 바다는 하늘의 서슬에 숨죽이다가 내일 더 그악스레 달려들려고 움츠려있는지도 모른다.

기동성을 높여 해상전투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경비함은 여객선과는 달리 폭이 좁고 길이가 길다. 무게 또한 만만찮기 때문에 바다 깊이 잠겨 작은 파도에도 민감하다. 때문에 물결이 거친 날은 배 위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멀미로 어지럽다. 당직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드러누워 빨리 바다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린다.

파도가 경비함 옆구리로 달려들 때 충격은 더욱 커진다. 때문에 함정은 파도를 맞받으며 항진하다가 되돌아오기를 거듭한다. 이때 거친 물결은 뱃머리에 맞서 장렬히 부서진다. 더 용감한 것들은 고물을 타고 올라 후미를 공략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멀미 때문에 식사도 못하고 사경을 헤매는 날도 있다. 밥을 먹다가 국그릇을 엎지르기도 한다. 거센 파도에 아예 가스레인지 불을 지피지도 못하고 모두가 대용식으로 때우는 날도 있다.

바다가 잠자는 날, 해경 1508함은 모처럼 평온하다. 전경대원들은 체력단련실에서 탁구를 치고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식당에는 자판기 음료를 빼든 대원들이 둘러앉아 잡담을 나눈다. 6.6㎡ 남짓한 사우나실도 이미 80℃로 후끈하게 데워져 있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1508함 여성 승선직원들도 모두 느긋하게 선실에 둘러앉았다. 강경숙(27) 경장, 노희숙(30) 순경, 이수미(37) 순경이 그들이다. 여경이 생활하는 선실은 침실과 휴게실, 욕실이 갖춰진 20㎡ 정도의 함상 '금남(禁男)의 집'. 좁지만 아늑하게 꾸며진 공간은 2층 침대에 작은 냉장고가 갖춰져 있고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다.

모두 미혼인 3명의 여경은 나이 차이도 있고, 근무기간 차이도 있고, 계급도 차이가 있지만 벽에 걸린 밀짚모자를 써 보일 때도, 화장품 보관벽장을 열 건지 말 건지 승강이할 때도 영락없는 친구 사이다.

2006년 경찰에 몸담은 강경숙 경장은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를 졸업하고 특채된 재원. 강 경장은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바다와는 인연 없었던 내륙 아가씨이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동경해서, 지루한 삶이 싫어서 바다와 관련된 직업을 택하고 경찰에 들어왔다.

강 경장은 "함상과 육지, 밤과 낮 근무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생체리듬이 깨져 피로할 때도 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이 일을 택한 만큼 후회 없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해경에 들어와 첫 발령을 받고 1년 2개월째 1508함에서 근무하는 노희숙 순경은 오는 4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이다. 동해해양경찰서 소속인 노 순경은 결혼 후 신랑이 생활하는 경기도 주안에 신혼집을 꾸밀 예정이다. 계속 경비함을 탈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물론 인천 해양경찰청 소속 기혼 선배 중에는 함상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임신과 육아문제를 생각할 때 내심 육상근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해경에 들어온 지 6개월 된 이수미 순경은 러시아어 전공으로 특채된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 국내에서 대학을 마치고 다시 러시아로 가서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여성 경찰이다.

이 순경은 "독도 최일선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함상 생활을 해나간다"면서 "서투른 점이 많지만 동료, 선배들이 가족과 같이 알뜰히 챙겨줘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3명 여경들이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에도 바다는 폭풍 전조와 같이 고요함을 이어가고 해무(海霧)에 싸인 독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어둠살이 내리면 해무가 걷히고 바다도 서서히 거친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바다는 남녀 차별을 두지 않는다. 1508함의 여경들은 그래서 더 당당하게 바다에 맞설 것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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