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운전자 벌금도 내줘요" 성행하는 유사휘발유

▲ 이달 초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대구 달서구 월암동 구 비상활주로 유사휘발유업소에서 11일 오후 업주들이 여전히 업소 문을 열고 차량에 유사휘발유를 주유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이달 초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대구 달서구 월암동 구 비상활주로 유사휘발유업소에서 11일 오후 업주들이 여전히 업소 문을 열고 차량에 유사휘발유를 주유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11일 오후 2시쯤 대구 달서구 월암동 구 비상활주로. 대형 화물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된 활주로 양쪽으로 가림막을 친 컨테이너 박스 5개가 눈에 띄었다. 컨테이너 앞에는 '시너 2만7천원, 세녹스 3만원' 등 대형 광고판이 서 있고,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컨테이너로 드나들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종업원은 "원래 여덟집이 있었으나 최근 단속 때문에 절반 정도만 문을 열고 있다"며 "최근 휘발유 값이 오르면서 중대형차 손님들도 많이 찾아 하루 30만~40만원 매상은 거뜬하다"고 말했다.

휘발유 값이 다시 치솟으면서 불법 유사 휘발유 업소들이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다.

단속이 되더라도 벌금형 위주의 가벼운 처벌이다 보니 업주들은 집중 단속기간이 지나면 곧바로 영업을 재개하는 등 '파리 쫓기식' 영업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달서구 월암동 구 비상활주로 일대는 이달 초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시너 판매업자 11명이 불구속 입건됐던 곳이다. 그러나 11일 이곳은 언제 단속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성업 중이었다.

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서자 한 남성이 "우리 가게 물(시너)이 아주 좋다. 연비도 좋고 품질도 좋다"고 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100% 시너 3만1천원, 80% 시너 2만9천원' 등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백화점 상품권 증정, 1통당 1천원 적립' 등 일반 주유소처럼 경품도 제공했다. 이곳도 지난해 6월 달서구청과 석유품질관리원 합동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었으나 버젓이 영업을 계속해왔다. 종업원은 "사장님은 예전 분 그대로이고 아르바이트생만 몇명 바뀌었을 뿐"이라고 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도 엿보였다. 인근의 또 다른 시너 판매점은 컨테이너 박스 앞 셔터가 내려져 언뜻 영업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박스 앞으로 다가서자 인기척을 느낀 직원이 안에서 잠근 문을 열고 나와 바깥동정을 살폈다.

시너 업소들의 난립과 불법영업은 적발되더라도 100만~200만원의 벌금만 물면 되는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 남구의 한 시너 가게 업주는 "1천만~2천만원만 있으면 쉽게 시너 업소를 차릴 수 있고, 이윤도 1ℓ당 150∼200원으로 주유소(70여원)보다 훨씬 높다. 단속을 당해도 며칠만 영업하면 벌금을 빼고도 남는다"고 전했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 연료사업법'에는 유사 휘발유 주유시 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형, 운전자는 50만원의 벌금을 받게 돼 있지만 약식 기소되면 벌금형이 고작이다. 일부 업주는 단속시 시너 구입 운전자의 벌금을 대신 내준다며 선전까지 할 정도다.

대구주유소협회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는 440여개의 주유소가 있지만, 시너 업소는 이보다 2배가 넘는 900여개 이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구시소방본부는 지난 한 해 동안 유사휘발유 업소 208개소를 단속, 84명을 형사 입건하고 124건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대구주유소협회 도명화 사무국장은 "대구에 등록된 휘발유 자동차 대수는 매년 느는 반면 휘발유 판매량은 제자리걸음으로 유사 휘발유 사용자가 늘어난 때문일 것"이라며 "시너 원료의 유통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