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인에 평등하다는 法…그래도 예외는 있는 法?

고무줄 형량·유전무죄 논란 왜 끊이지 않나

한평생 살면서 법원 한 번 안 가봤다면 그것도 '행복'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현대사회처럼 소송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행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법정에 나서는 사람들의 속내는 모두 다르다. 억울해서 법 앞에 '솔로몬의 지혜'를 호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촘촘하지 못한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뒤 '그것 봐라. 내가 법적으로 무슨 죄가 있느냐?'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도 있다. 죄를 지은 사람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 제3자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도 모두 다르다. 이들 모두를 만족 또는 납득시킬 수 있는 판결은 존재할 수 있을까? '같은 범죄, 다른 형량'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여전히 '고무줄 형량'이라며 사법부 판단을 비웃기도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자본주의와 사법적 판단의 부적절한 밀월관계를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공정한 재판'은 무엇을 말할까?

◆같은 범죄는 존재하는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재벌 총수 및 일가, 정치인들이 저지른 불·탈법에 대한 판결을 지켜본 서민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회사원 박은조(45)씨는 "적게는 수억원에서 수백억 원의 검은 돈이 오간 불법적 관행에 대해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 과연 정의로운지 물었을 때 국민 몇 퍼센트나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우리나라는 하위직과 힘 없는 서민들에게 훨씬 더 강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법 감정은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자는 한 판사에게 "같은 범죄에 대해 다른 형량이 선고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판사는 과연 '같은 범죄'가 존재하는지 되물었다. 사실 이는 오래된 법조계의 숙제다.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똑같을 지 몰라도, 범행 동기와 정황, 과정 등에서 결코 같은 사건, 같은 범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영철, 강호순 등 '사이코 패스' 범죄에 대한 잣대와 자신을 수년간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한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에 비춰봤을 때, 비록 세부적 내용은 조금 다를지언정 특혜를 대가로 일정액을 받았다면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아울러 시민단체측은 "시국 사건과 관련, 과격행위로 기소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판사 성향에 따라 집행유예와 실형으로 선고가 달라진다"고 비난한다.

헌법 제103조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심판의 기준'으로 헌법과 법률이 존재하며, 아울러 판사의 양심이라는 주관적 재량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은 일견 당연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게다가 형량을 선고할 때에는 단순 범죄사실 외에 많은 내용들을 감안하게 된다.

대구변호사회 홍보이사인 박정호 변호사는 "살인이라고 해도 수단·동기·잔혹성 등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범죄는 있을 수 없다"며 "판사가 이런 개별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선고 형량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고무줄 형량과 양형기준안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되는 범죄 사실과 함께 피고인의 태도나 반성 여부, 배상이나 피해 변제 여부와 정도, 피해자의 선처 요청, 재범 가능성 등을 감안해 어떤 형을 선고할 지 결정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가지 주요한 '변수'가 작용한다. 먼저 흔히 '정상 참작'이라고 말하는 형벌의 감경 요소, 즉 보다 가벼운 벌을 내릴 수 있는 내용들을 가급적 재판부에 많이 제시해야 하는데 여기에 변호사의 역량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살인·강도·사기·횡령죄를 저질렀더라도 변론 능력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사유를 많이 제시할수록 벌은 가벼워진다는 뜻. '전관 예우' 또는 '무전유죄'는 여기서 비롯된다. 변론 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를 선임해 양형자료를 충분히 제출할 수 있다면 보다 가벼운 형을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 대구고법 백정현 공보판사는 "재판에서 변호인이 얼마나 다양한 감경사유나 유리한 양형자료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선고 형량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오히려 '전관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건을 신중히 조심스럽게 처리하고 있으며, 다만 재판을 처리해 본 경험이 많은 변호인일수록 재판에 적절한 감경사유와 유리한 양형자료를 많이 제시할 가능성이 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판사의 성향도 판결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다. 백정현 판사는 "판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특정 범죄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거나 보다 엄하게 처리하는 등의 주관적 잣대를 가질 수 있다"며 "하지만 그런 주관적 기준도 사법적 테두리 안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지도록 사법부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석수 전 대법관)는 지난해 11월 살인죄·성범죄·뇌물죄에 관한 양형기준안을 마련한데 이어 지난 6일 위증·무고죄, 횡령·배임죄, 강도죄에 대한 양형기준안도 제시했다. 보다 예측가능하며 국민 법 감정에 부응하는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 밖에 변호사들은 그간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던 판사의 영역에 대해 평가를 내리겠다며 '법관평가제'를 도입했고, 비록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석해 재판에 간여하는 '국민참여재판'도 2년째를 맞고 있다. 아울러 검찰측은 범죄 혐의자가 죄를 시인할 경우 형량을 감해주는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형량협상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사법계의 큰 변화를 몰고 올 다양한 제도와 기준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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