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호주 남동부에 위치한 섬 태즈매니아의 주도 호바트(Hobart)시에 있는 한 영국식 정원. 현악 4중주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브로드비(Broadby) 집안과 브로케이트(Brokate) 집안 사이의 결혼식이 열린 날. 아들을 장가 보낸 에이드리언(Adrian·59)·데보라(Deborah·55·여) 브로드비 부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뜻 깊은 날이었다. 호주에서 벌어진 아주 특별한 결혼식 현장을 들여다본다.
◆한국과 맺는 또 다른 인연
이날 결혼식의 특별함을 말해주는 실마리는 신랑 션(Sean·26)의 옆에 선 신부 로린(Lauryn·25)의 남다른 용모와 피부색에 있다. 육상선수 출신으로 건장한 체격의 션과 달리 로린의 체구는 아담하다. 쌍꺼풀 없는 눈에다 햇빛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피부. 그녀가 아시아인임을 알려주는 신체 조건이다. 그리고 취재에 나선 한국인의 눈에는 첫눈에 한국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 그녀의 남동생 조엘(Joel)도 그렇다. 브로드비 집안에 이날 결혼식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결혼을 통해 맺어진 한국과의 인연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살아가며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도 좀처럼 보기 힘든 곳이 태즈매니아. 외국인 이민자가 많은 호주 본토와는 달리 태즈매니아에는 백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 그런 곳에서 두 자녀의 배우자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브로드비 부부가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년 전에 시작됐다.
큰딸 리아(Leah·28)가 지난 2006년 6월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서부터. 큰딸은 2003년 호주에서 한국 대학생들을 만나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하게 된 뒤 무작정 '한국이 좋다'며 2005년 초 집을 떠났고, 2년 뒤에 한국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알려왔다.
브로드비 부부가 딸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것은 2006년 1월 초. 이때 아들 션은 이미 로린과 사귀고 있었다. 한국인 입양아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아들에 이어 한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통보(?)는 당연히 놀라운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데보라씨는 딸의 전화를 받고, "정말이냐?"라며 확인부터 해야 했다. 에이드리언씨도 놀라긴 마찬가지. 그는 "우연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운명적인 것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데보라씨는 "우리 가족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런 한국과의 인연이 어떤 고결한 것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로린에게도 이는 '멋지고 흥분되는' 소식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모국에 대한 연대감이 더욱 질기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리아의 남편에 대해 호기심도 생겨났다. 그 이후로 한국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로린과 동생 조엘(Joel)을 입양한 린(Lynn)씨도 이런 소식에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네 사람(리아 부부와 션·로린 커플)의 유대감을 더욱 강하게 해 줄 것"이라고 희망했다. 두 번의 결혼으로 한국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진 이들 가족에게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국가가 아니다.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크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녀들에게 새로운 조국이 됐다.
◆매운맛이 생각나는 호주 여자
신부 로린은 호주인이다. (호주) 영어로 말하고 호주식으로 생각하고, 호주인의 삶을 산다. 그러나 그녀의 고향은 한국이다. 1984년 7월 24일 서울 태생이다. 한국 이름도 있다. 배여운(裵黎雲). 그렇게 흔한 이름은 아니다. '새벽 구름'이라는 이름의 뜻 또한 그렇다. 그런 한국 이름만큼이나 삶도 남들과는 달랐다. 태어난 뒤 잠시 양부모집에 머물렀다가 호주로 입양됐다. 출생 후 7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로린은 "호주에 왔을 때 알고 있던 한국어는 불확실한 발음의 '엄마'를 비롯한 세마디밖에 없었다"고 했다.
호주 내에서도 유색인종을 찾아보기 힘든 태즈매니아에서 그녀는 유난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입양 2년 뒤에 두 살 어린 남자애가 한국에서 왔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로린은 "학교에서 동생과 함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인종차별은 없었다. 친구들과의 학교생활은 재미났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갓난아기 때 호주로 입양돼 호주인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그저 자신이 태어난 곳일 뿐이다.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양어머니가 나중에 호바트에서 열리는 한국인 입양인 모임에 보낸 것도 그녀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로린은 "몇 번 나가다가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피는 속일 수 없었을까? 로린은 어릴 적 "매운 음식이 자꾸 생각나서 혼자 돔양 수프(태국식 매운 음식)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가족 중에 누구도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런 식성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다"는 로린은 최근에는 한국의 신라면을 사서 한 번씩 끓여먹고 있다. '매운맛'에 제대로 반한 그녀에게 한국의 매운 라면은 '최고의 음식'이 됐다.
로린은 최근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시누이의 남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로린은 이를 계기로 "한국에 대해 제대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서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로린은 "부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를 입양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형제·자매는 있는지, 유전적 문제는 없는지 등이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낳아준 조국과 부모를 찾고자 하는 동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녀가 멜버른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이다. 인종 구성이 다양한 멜버른에서는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같은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의 교수도 조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이유가 됐다. 로린은 "교수가 호주 내 한국인 입양아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며 소개했다. 그만큼 다른 한국인 입양아들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린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생모를 만난 두 입양아 출신 친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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