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다. 진중권(46·중앙대 겸임교수)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독설을 쏟아낸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나 '디 워' 논란, '미네르바 구속'과 '용산참사' 때도 그랬다. '이명박의 머리 속에는 삽 한 자루가 들어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양촌리 김회장 댁 둘째 아들' '관객이 울지 않으니 용이 대신 울고 지나가더라' 등 그의 발언들은 어록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물론 쌈닭 같은 그의 풍자를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문성이 없다'거나 '386 패거리로 발언권을 독점한다' '유명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슈를 만든다'는 식의 논란도 쉴 새 없이 벌어진다. 그가 왜 욕을 먹어가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지 궁금했다. 그를 둘러싼 갖가지 비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알고 싶었다. 7일 오전 서울역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한 그는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잘 못 자요. 하룻밤을 새면 다음날에는 졸려야 하는데 잠이 안 와서 늦게 잠자리에 들었어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의 표정은 활기를 띠었다. 생각보다 훨씬 유연해 보인다. "3년 전부터 약간 우울증이 있다"는 그는 "황우석 사태 이후에 정신적으로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치적 글쓰기를 재개했다"고도 했다.
◆악역이 필요한 모양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고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의식적으로 그러는 건가요?
"논쟁을 예상하고 글을 쓰진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사회적 이슈나 문제가 돼야 할 이슈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가볍게 게시판에 올린 글도 언론에 의해 원치 않는 맥락 속에 들어가거나 공론화되면 부담이 될 경우도 있어요. 또 악역이 필요할 때 불려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일종의 '풍자가' 혹은 '독설가'로서 역할이 필요한 거겠죠."
-악역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TV토론에 나가는 이유는 뭔가요?
"사실 '먹물'들은 대중과 싸우는 걸 버거워해요. 대중을 설득하려면 강의가 필요한데, 강의를 들어줄 대중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고, 괜히 말 한마디 했다가 욕 먹는 것도 유쾌하지 않으니까 안 하려고 하죠. 영화 '디 워' 때에도 MBC '100분 토론'에서 연락이 왔는데, '왜 또 나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먹물들은 담론화를 해줘야 돼요. 장바닥에서 떠도는 말을 정제하고 담론화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끌어내는 게 먹물들의 임무입니다."
-자꾸 논쟁에 휩싸이다 보면 주변에서 몸조심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나요?
"이명박 정부 들어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벌써 명예훼손 소송이 2건이 걸려 있어요. HID 북파공작원과 지만원씨로부터 들어왔어요. 손보고 싶겠죠. 지금까지 10년 동안 논객을 했지만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번 정권은 좀 지독한 것 같아요."
-만약 '사이버 모욕죄'가 도입되면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저는 가능한 한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게 글을 쓰는 게 원칙입니다. 똑같은 욕을 하더라도 레토릭(수사학)을 사용해서 풍자로 바꿔주고, 팩트는 철저하게 신문 등에서 인용을 합니다. 사실 죄가 없더라도 일단 걸리면 검찰이나 경찰에 끌려는 다녀야겠죠. 만약 사이버 모욕죄가 도입되면 저도 반격을 할 겁니다. 우선 사이버 모욕죄를 찬성하면서 제게 욕을 했던 이들을 집단으로 넣을 거예요. 아마 수천 명 되겠죠."
◆나를 완성한 건 독일 유학시절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어요?
"날라리였어요. 정학을 세 번 먹고 졸업했으니까. 흡연 두 번에 폭행 한 번. 반항도 아니었고 그냥 노는 게 재미있었어요. 사회과학책은 더러 읽었죠. 칼 카우츠키의 '임노동과 자본' 같은 책을 영어공부하는 셈치고 번역을 하고 그랬으니까.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이었어요. 주동자는 아니었고 가능한 데모는 다 참여하는 정도. 대학원에 가서야 제대로 지하조직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는데 함께했던 사람이 '왕의 남자'의 배우 정진영,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정의성 같은 이들이었죠. 언어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미국 언어철학 강의를 열심히 들었고, 마르크스주의 공부도 많이 했지만 다른 공부도 균형 있게 한 것 같아요."
-독일 유학 생활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줬습니까?
"굉장히 영향이 크죠. 텍스트를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웠으니까. 교수와 3년 동안 논쟁을 벌이면서 굉장히 이론적인 훈련이 많이 됐어요. 사회를 보는 철학적인 틀이 마련이 된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공부했고, 이미 1930년대 말에 정보혁명, 과학혁명의 패러다임을 예언한 발터 베냐민을 통해 글쓰기와 비평 활동에 대한 영감을 얻었어요."
-박사 학위 과정은 왜 중도에 포기했습니까?
"돈도 없었고, 학위가 별로 필요 없었어요. 지금도 전임교수가 되려면 받아야 한다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저는 강사도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이지만 먹고살 수만 있으면 훨씬 편해요. 강의만 하고 성적만 주면 되니까. 늘 긴장감이 있어요. 시대에 뒤처지면 안 되니까 매년 독일에 가서 자료를 훔쳐옵니다. 새 책을 30㎏씩 사옵니다."
-유학시절 만난 일본인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요?
"어머니가 별로 좋아하진 않으셨죠. 둘째 누나도 국제결혼을 했는데 한 집안에 두 명이나 국제결혼을 하는 건 심하지 않으냐고 해서. 아내와 아이는 8년 전부터 독일에서 생활을 해요. 제가 겨울에 독일에 가고, 여름에는 가족들이 들어오고. 아내는 제가 뭘 하는지 잘 몰라요. 그냥 TV에 나오면 좋아하죠. 신문에 제 얼굴이 나오면 오려서 스크랩을 해서 정리해 놓고. 그런 게 재밌나 봐요."
◆진중권을 둘러싼 비난들
-2006년 정치적 글쓰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한 이유가 뭔가요?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이 황우석 지지로 돌변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실망했어요. 대중들은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적 코드를 변함없이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거든요. 주사파, 친북파가 민주노동당을 장악하는걸 보며 희망도 잃었죠. 하지만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대중은 굉장히 다면적이라는 생각에 고무됐어요. 때마침 진보신당이 창당되면서 구심점이 생겼고.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무식하고 천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어요. 상상을 초월합니다. '통일은 없다'는 책을 쓴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앉히고, 국가보안법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이 유엔 인권대사가 되잖아요."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고 '전문성이 없다'며 비난하는 이도 있습니다.
"기가 막히죠. 제가 미학 전공자이고 책을 낸 게 벌써 몇 권이에요? 또 카이스트 겸임교수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였고, 중앙대에서 겸임교수예요. 제가 전문가라는 주장을 하려면 자화자찬을 해야 되는데 웃기잖아요. 제 전공이 철학이고 언어철학, 미학, 해석학을 공부했어요. 과학철학, 법철학, 경제철학, 윤리학, 미학 등 다양한 철학적 영역에서 평론을 하는 거예요. 요즘은 학문 간 통섭(지식의 통합)이나 융합 등의 개념을 많이 거론해요. T자형으로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가 결합되는 겁니다. 그게 시대정신이에요."
◆이명박 정부는 낡은 마인드가 문제
-이명박 정부 1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엉망진창이죠. 가장 큰 문제는 마인드가 낡았다는 겁니다. 1970년대 초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때의 마인드예요. 혼자 다 하려고 하고 명령하고. 또 능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을 차관에 배치해서 정치를 하잖아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도 대부분이 토목공사 위주입니다. 토건경제는 일본의 10년 불황을 낳았고, 부동산 붐은 미국의 위기를 가져왔는데 그 해법을 답습해요. 10년 동안 권력에서 떨어져 있어서 인재풀도 없고요.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해요. 말이 CEO이지 현장 감독이에요. 지금도 민생탐방이라면서 남대문 목도리 쇼나 129 전화통 연극 등 현장 다니면서 사진 찍는 것 좋아하잖아요. 여기에는 자신이 자수성가를 했다는 확신이 있어요.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는 소설을 쓰는 분위기예요. 내년이 되면 한나라당 잠룡이 다 튀어나올 겁니다. 그러면 바로 레임덕이 시작되는 거죠."
-최근 우리 사회 단면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사건이 뭐가 있을까요?
"이번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의 축약판이죠. 가진 자들은 배임·횡령 등 죄를 지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반면 가진 걸 빼앗긴 사람들이 극한 저항을 하면 폭력이나 떼법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은 사람이 6명이 죽었는데도 단순한 실수라며 실수할 때마다 처벌하면 누가 일을 하겠냐고 합니다. 살벌하죠. 유모차 끌고 시위에 나가는 게 아동학대죄가 되고,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에 긴급체포되고, 구속영장이 발부돼요.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전기통신법 47조는 25년 동안 선고는커녕 적용된 예가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 법을 들고 나와서 처벌합니다. 사형제도도 10년 동안 집행을 안 하면 사실상 폐지국인데 여론을 호도하면서 집행을 한다고 나서잖아요."
-앞으로 계획은?
"책을 한 권 쓸 겁니다. 지금은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대중에 상관없이 제 생각을 쫙 펼칠 수 있는 글쓰기를 할거예요. 가장 높은 수준의 순수한 논리와 사유가 담긴 철학책을 쓰고 싶어요. 이 책 한권을 쓰면 죽어도 좋다 싶은 책."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진중권은 누구?=1963년 서울 출생.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 작곡가 진은숙, 음악평론가 진회숙의 동생이다. 1986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고 1992년 동 대학 대학원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로뜨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철학과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다 1999년 귀국했다. 1998년 계간 '인물과 사상'에 '극우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하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1, 2'를 출간하며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언론권력과 박정희 전두환의 정치 파시즘을 비판해 왔다. 그 후 대한민국의 군사문화와 획일주의,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란, 미국산 쇠고기 협상 논란, 미네르바 구속 논란 등 각 분야의 사회 현상들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미학 오디세이' '폭력과 상스러움'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호모 코레아니쿠스' 등 20여권의 대중교양서를 썼고, '컴퓨터 예술의 탄생' 등 5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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