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윤동주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가 집으로 날아왔다.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이었다. 28세의 젊은 철인은 원인 모를 죽음으로 고향인 연길 용정에 묻혔지만 조국의 아픔과 함께 하던 그의 고뇌는 지금껏 남았다.
중국땅에서 태어나 서울의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군국주의 열풍이 일본 열도를 뒤덮자 한 학기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옮겼다가 이듬해 7월 체포됐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936~1937년 사이 만주 연길에서 '병아리' '빗자루'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구 사나' 등을 발표했다. 연희전문 시절에 발표된 '자화상' '서시'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등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끌어안은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애송된다. 연희전문 졸업 때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사후인 1948년에야 뜻이 이루어졌다. 1968년에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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