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변호사 시험법안'이 부결되면서 개원을 코앞에 둔 경북대와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고, 현직 변호사 등 법조인들은 결국 곪은 상처가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법무부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로스쿨 졸업생이 아니라도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면서 지역 로스쿨 대학들이 "설립 취지를 뒤엎는 처사"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로스쿨 운영 차질 없나?=경북대·영남대 등 지역 로스쿨은 변호사 자격시험 방법이나 과목 등에 대한 밑그림이 들어있는 법령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원하는 황당한 사태를 맞게 됐다. 이는 로스쿨 교과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한 학기 500만원 이상의 고비용을 들이고 입학한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가게 됐다.
영남대 배병일 로스쿨 원장(법학부 교수)은 "당장 2주 후면 로스쿨 학생들이 입학하는데 이들에 대한 근거법률조차 없다는 상황이 당혹스럽다"며 "특히 지금쯤은 변호사 시험 예상문제까지 나와야 할 상황에서 시험과목이나 문제출제 유형이 뭔지도 모른 채 개원하게 돼 교육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 원장은 또 "개원 전에 법안이 통과되면 다행이지만 학기 중에 변호사 자격시험 방법이나 과목 등이 결정될 경우 그동안 마련한 세부 교과과정을 다시 재조정해야 하는 등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 예상된다"고 했다.
경북대 김성룡 교수(법학부)는 "법령으로 시험과목 등 평가방법이 빠른 시일 내에 확정되지 않으면 로스쿨에서 세부 교과과정을 준비하고 교육하는 데 큰 차질을 초래할 것"이라며 "특히 정부가 4년 뒤 로스쿨 평가 때 잦은 교과목 개편에 페널티를 주기로 해놓고 오히려 교과목 개편을 유도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 대학 장재현 교수(법학부)는 "2016년까지 변호사 시험과 사법시험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응시횟수 제한 등을 규정할 변호사 시험법이 마련되지 않아 로스쿨 학생은 물론 사법시험 응시생들이 진로 계획이나 시험 준비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로스쿨 근간을 뒤엎나?=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도 지역 로스쿨이 발끈하고 나섰다.
영남대 한 교수는 "일반인에게 응시자격을 줄 경우 로스쿨 '메리트'가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존립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다른 교수도 "만약 독학으로도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게 한다면 누가 3년간 로스쿨을 다니며 최소 5천만원 이상의 학비를 감당하겠느냐"며 "당장 독학이나 유사 로스쿨·사설학원 등이 등장하면서 입학생 급감으로 폐교 로스쿨도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병일 원장은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로스쿨의 존재와 설립 취지를 뒤엎는 처사"라며 "신입생까지 선발해 놓은 상황에서 로스쿨 제도 자체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은 로스쿨을 설립한 대학은 물론 입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재현 교수는 "정부가 이왕 로스쿨을 도입했으면 시험과목 수를 대폭 줄이고, 합격률을 높이는 등 로스쿨을 하루빨리 정착하는 방안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국 25개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임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오는 19일 긴급이사회를 서울에서 열고, 이 같은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에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곪은 상처가 터졌다?='변호사 시험법 제정안 부결'로 촉발된 로스쿨 논란에 대해 현직 변호사 등 법조인들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한 과도한 진입 장벽,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전문성 확보 등 로스쿨 도입 초기부터 제기돼 왔던 논란거리를 정부와 여당이 무시하고 로스쿨을 강행하다 화를 자초했다고 보고 있다.
대구의 한 변호사는 "법률 서비스는 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그 수준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가 많아지는 만큼 소비자의 선택권이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이는 3년제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 대한 시장성과 직결된다.
그는 "기성 변호사들은 대학 4년에 고시 시험 준비 기간, 사법연수원 2년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 배출된 인력"이라며 "과연 사건을 맡기는 입장에서 3년짜리 로스쿨 출신 변호인에게 사건을 맡기겠는가"고 되물었다. 이렇게 해서 사건이 여전히 기성 변호인에게 집중된다면 수임료가 낮아지는 효과도 의문이라는 것.
또 다른 변호사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전문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로스쿨 출신들은 다양한 전공자를 내세운 백화점식 대형 로펌에나 어울릴 것"이라며 "로스쿨 출신들의 변호사 개업이 어렵게 되면 '인 하우스 로이어'(in house lawer·사내 법조인)로 채용되는 길이 많이 열려야 한다"고 했다.
이번 변호사 시험법 제정안 부결과 관련해 '기득권 지키기' '업권 보호' 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냈다. 한 변호사는 "반대표를 던진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변호사를 다시 할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사들은 차제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로스쿨 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박정호 변호사는 "비싼 등록금과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로스쿨이 또다른 '고시낭인'이나 실업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일본의 로스쿨 실패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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