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계파 정치 제대로 하라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으면서도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여권의 분열 때문이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세력과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세력 간의 감정의 골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한 지붕 두 가족' 상태가 1년째 지속되고 있다. 친이계는 친박계가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만 있다며 갈등의 책임을 친박계의 비협조에 돌리고 있고, 친박계는 역할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비난만 한다며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다.

양측 간의 갈등은 3월 초로 예상되는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과 4월 재보선 공천 과정을 통해 최고조에 달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系派(계파) 정치'는 3金(김) 시대를 끝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특히나 계파 정치는 집권 여당이 아니라 야당의 전유물이었다. 강력한 대통령이 이끌던 여당에서는 대통령과 반대되는 계파 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당에는 계파라기보다는 당직에 소외된 '비주류'가 있었을 뿐이다.

국어사전은 '계파'에 대해 하나의 조직을 이루는 작은 조직으로 설명한다. '계파 정치'는 20세기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등 이른바 3김은 수십 명의 계보 정치인들을 기반으로 대통령이 되거나 DJP연합의 한 축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당시 상도동계니 동교동계니 하던 야권 계보는 친박계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계파 보스들은 정치 자금과 당직으로 자신의 계보원들을 관리했다. 지금과 같이 비교적 투명하게 정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검은 돈'을 자양분으로 정치 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했던 과거 계파 보스들은 수시로 정치 자금을 나눠주거나 당직 배분을 통해 계파를 관리할 수 있었다.

정권 교체가 된 이후 이 같은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계파 정치를 일삼던 야당은 여당 체질로 바뀌면서 계파 정치를 청산했다. 여당에서 하루아침에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 역시 강력한 지도자가 없어서 계파 정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후 한나라당 내에서는 주류와 비주류가 있었지만 계파는 없었다.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은 이후 한나라당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는 참여정부 당시 탄핵 정국을 정면돌파하면서 양김 이후 가장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갖춘 정치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그는 과거 계파 보스들처럼 정치 자금과 당직을 미끼로 계보원들을 관리하는 구태 정치를 멀리했다. 그가 하는 정치는 계파 정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집권 여당에는 친이와 친박의 양대 계파로 나뉘어져 있다. 과거와 같은 강력한 무기가 없는데도 어떻게 계파 정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친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인사들도 속속 친박계로 흡수되고 있는 이유는 박 전 대표의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특보들도 넘친다.

정치권 주변에서 측근이라는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자주 있다. 측근이라면 보스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와 충성심을 갖춰야 한다. 보스가 싫어할 것이지만 결국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면 자리를 걸고서라도 그래야 한다.

한나라당에 이왕 계파가 존재한다면 제대로 계파 정치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계파의 이익에 매몰돼 국가와 민족은 나 몰라라 하고 제멋대로 떠들어댄다면 그것은 조선시대의 당파 정치의 아류보다도 못하다는 욕만 들을 것이다.

서명수 정치부차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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