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마이너스 성장시대 노조 역할

내부적으로 비정규직 끌어안고 바깥으론 국가경제 고민하길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마이너스 경제 성장이나 저성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노동자(직장인)들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거리로 내몰릴 가능성을 걱정하며(혹은 실제로 해고되어) 이미 소비를 자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불가피하게 소규모 자영업체들이 연이어 폐업하는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소규모 자영업의 위기는 문자 그대로 '서민 경제의 위기'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노동 운동계에서도 이미 '일자리 나누기' 등 고용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이 주도하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의 분위기를 보면 이 문제가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엔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너무 심하고, 일부 노동 운동가들은 "불황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잘못도 아닌데 왜 피해를 봐야 하느냐" 식의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관계를 '노동'이라는 개념 속에서 짧게나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원래 '노동'(labor)은 인간의 각종 활동 중 '판매할 수 있는 부분'만을 의미한다. 당신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흥얼거리는 콧노래, 친구의 이삿짐 날라주기, 취미 생활 등은 '활동'이지만 '노동'은 아니다. 임금이라는 대가를 받으며 자본(회사)측의 통제 하에서 수행하는 활동만이 '노동'의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란 어떤 존재인가. 문자 그대로 '노동이란 상품'을 '판매'하는 자, 즉 '소상인'이다. 그런데 노동을 판매하는 공간(노동 시장)에서, 개인으로서의 소상인(노동자)은 자본에 대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놓여 있다. 자본과의 세력 균형을 위해, 소상인들끼리 연합해 교섭력을 높이는 조직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결국 노동조합의 본업은 '자본과의 흥정'을 통해 '노동이라는 상품의 가격'을 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의 역할은 결국 '우리 조직'과 '우리 정규직'의 '몸값 올리기' 이상으로 확장되기 힘들다. 한때 '노동(자)'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행태가 횡행했지만, 원론적으로 '노동(자)'은 그리 영광스러운 이름이 못 된다.

그러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이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노동 숭배'의 사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그가 자신의 노동을 얼마나 비싸게 팔고 있는가에 좌우된다. 노동 시장에 들어가지 못하거나(실업자) 혹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자'(비정규직)는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혼인 시장'에도 들어가기 힘들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상품에 불과한 동시에 '인간의 가치' 그 자체이며, 타인과 교통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처럼 교섭단체로서 노동시장에서 '우리 조직 노동자'들의 '가격'을 올리는 데만 집중해도 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시장 논리 안에 머물 때 노동조합은 갈수록 불리한 지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불황이 아니라고 해도 기술과 경영 조직은 점점 더 노동자(일자리)를 줄이는 쪽으로 발전해왔고, 이는 (좋은)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우리 몸값 올리기'에만 집중한다면 '노동'은 점점 더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거대 자본과 가망 없는 알몸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노동 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몸값 올리기'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소상인으로서의 이기적 존재 형태'를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감히 생각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의 형편과 국민 경제 전체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연대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노동자들, 특히 정규직들은 스스로를 '약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세계 10위 규모의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축 중 하나이며 안으로는 국민 경제, 밖으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미 강력한 세력이다. 이런 노동자들이 자기 일자리와 자기 몸값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자해 행위일 수밖에 없다.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가혹한 상황 앞에서 노동 운동이 내부적으로는 비정규직, 외부적으로는 국민과 함께 더욱 유연하고 담대하며 공공적인 대안과 투쟁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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